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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자코 반도르말, 2015)후기>

by 무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1. 신은 아동학대범이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는 개만도 못한 '신'이 나온다. 신에 대한 일반의 통념을 뒤집는 이 중년의 개저씨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어느 평범한 서민 아파트에서 순종적인 중년의 여신과 당돌한 열살짜리 딸과 함께 산다. 그는 컴퓨터로 세상을 창조한 장본인이지만 자신의 쾌락을 위해 수시로 인류를 괴롭히는 자폐적 사이코패스다. 괴팍하기 짝이없는 이 개망나니 신의 매질과 학대에 진저리를 내던 그녀의 딸 이아(필리 그로인)는 아파트를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던 중 신의 뜻을 어기고 가출했다가 돌아와 작은 석고상이 되어버린 그녀의 오빠 jc(예수)에게서 탈출방법을 전수받는다. 이아는 신이 잠든 틈을 타 그의 집무실로 들어간다. 거대한 요새를 연상케 하는 신의 집무실에는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든 기록들이 파일로 정리되어 있고 정 가운데에는 인류를 조종하는데 쓰이는 컴퓨터가 놓여있다. 이아는 컴퓨터를 조작하여 전 인류에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나머지 시간을 전송한 뒤 드럼세탁기의 긴 통로를 통해 아파트 밖으로 빠져 나온다. 과연, 최근 학대받던 열한살 아동이 환풍기를 통해 탈출한 사건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다.
현대판 엑소더스랄까. 어렵사리 세상으로 나오게 된 이 신의 딸은 처음 만난 노숙인과 함께 자신의 여섯 사도를 찾아 나선다.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한 스토리 전개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괴팍한 신의 이야기와 이아의 탈출까지가 <창세기>와 <출애급기>에 해당하는 구약이라면 이아가 찾아다니는 여섯 사도들의 이야기가 신약에 해당되는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다. 영화의 원제가 "The Brand New Testament"라는 점을 잊지 말자.


2. 내 안에서 위로를 찾는 여정
이아가 찾아다니는 여섯 사도들의 면면은 과히 아웃사이더, 혹은 소수자의 표본이라 할만하다. 어릴적 지하철 사고로 한쪽 팔을 잃어버린채 실리콘 의수를 차고 살아가는 여자, 평생 의미없는 회사일로 바쁘게 보내며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중년의 남자, 어릴적부터 스스로를 암살자라고 생각하며 살아 사랑의 감정을 모르는 남자, 풍족하게 살아가지만 늘 마음이 공허한 노년의 귀부인, 포르노에 탐닉하는 배나온 색정광,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아이가 그들이다.
이 보잘것 없는 사도들은 예수의 사도들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로 복음서를 채워가며 스스로 위안을 찾는다. 이아가 신의 컴퓨터를 조작하여 전 인류에게 전달한 "남은 생존시간"을 이미 받아 본 자들인지라 이들에겐 남은 삶에 대한 의욕이 존재할 리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관심은 자기 위안이다. 어릴적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을 잃어버린 여자가 꿈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한 쪽 팔이 펼치는 아름다운 발레를 감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누군가를 죽이려하다가 평생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알게 된 남자가 거울속 자신과 따뜻한 포옹을 하는 장면은 아픈 기억을 어루만지며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는 고독한 현대인들의 상처와 치유를 잘 그리고 있다.


3. 세상을 뒤집어 보자. 구원은 이 곳에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패러디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영화속 패러디나 상징은 기존 질서를 뒤집기 위한 설정들이다. 창세기와 출애급기, 사도들의 복음서로 구성된 성경의 순서를 차용한 각 에피소드들이 그렇고 기껏 석고상이 되어버린 예수가 그렇고 창조주인 신이 자신의 피조물보다 못한 개망나니라는 설정과 자신의 잔여수명을 알게 된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들이 그렇다. 영화는 세상을 지배하던 성인남성 '아버지(하느님)'의 전횡에 맞서 기존의 신을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버린 후 '여성'인 '아이'와 재창조주인 '엄마'를 제2의 메시아로 내세워 기독교적(권위적) 통념을 조롱한다. 이아가 탈출구로 삼은 드럼 세탁기는 폭력으로 가득한 신의 영역에서 세속으로 역탈출하기 위한 구원의 자궁이다. 이아를 뒤따라 속세로 이어진 긴 세탁기의 통로를 따라나온 신이 세제거품을 뒤집어 쓰고 쓰레기 음식을 먹은 후 야경꾼들의 발길질 세례를 받는 것은 절대자(권력자)에 대한 고의성 짙은 야유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야유와 조롱, 해학과 비틀기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영화는 자신의 잔여 생존시간을 알게 된 사람들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원받는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무료한 일상에 시달리던 회사원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떼들을 따라 구원받고, 포르노에 탐닉하던 남자는 어린시절 자신의 섹스심볼이던 여성과 재회하며 구원받고, 팔을 잃어버린 여자와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구원받고, 무관심한 남편에 절망하던 노파는 자기만을 바라보는 야성적인 고릴라와 사랑에 빠지며 구원받고, 부모에게 종속되어 살던 아이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 구원받는 식이다.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어요. 바로 여기가 천국이에요."라고 당돌하게 외치는 이아의 대사는 고답하기 짝이없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조롱하는 이 영화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4. 사족
전체적으로 신선하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재미있는 환타지 동화를 한장 한장 넘기며 키득거렸던 어린시절 경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섯 사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비슷한 설정과 전개가 집중력을 흐트린다. 중간 중간에 코믹한 설정들이 아기자기하지만 상상력을 뛰어넘는 과한 설정들이 우리 영화관객들에게 어필할지 모르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안 보는게 좋겠다. 현실감 쩌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도 보지 않는 걸 권한다. 그러나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폐한 일상에 신선한 물 한바가지 끼얹고 싶은 분들은 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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