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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Dec 12. 2018

남영동을 떠나며

인권경찰의 역사도 기억해주세요

이사짐을 싸고 있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저희 경찰은 2005년부터 13년 조금 넘게 이 곳 남영동 청사에서 '경찰청 인권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다양한 일들을 해 왔습니다. 아, 저는 개인적으로 2012년에 남영동 청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만 이 건물과 이어온 7년의 인연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꺼번에 수 많은 상념이 떠오릅니다.


남영동의 첫인상은 차갑고 쓸쓸했습니다. 당최 서울이라고 믿을수 없는 동네였습니다. 시골마을 간이역 같은 남영역 출구 끝에 좁고 어두운 굴다리가 이어졌고, 채 녹지 않은 지저분한 눈더미 사이로 가로수가 어정쩡하게 늘어서 있는 큰 길가엔 호프집과 빵집 따위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중년신사의 손가락 끝을 따라 걷다보니 후미진 골목길 중턱에 남색 철대문과 검은 벽돌건물이 저를 막아섰습니다. 첫 출근길의 기억입니다. 예상치 못한 발령이라 마음 더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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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센터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기억하고, 보존하고, 널리 알리자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다시는 이러한 불행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경찰의 굳은 다짐 위에 세워졌습니다. 물론 경찰에겐 한계가 있었고 부족한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인권의 관점에서 경찰이 스스로 권한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역량을 채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인권센터를 거쳐간 공무원들은 이 곳을 널리 알리는 한편, 인권을 경찰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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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어두운 과거와 미래를 향한 다짐을 알리기 위해 경찰청 인권영화제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시민과 경찰 동료들이 함께 영화제를 만들어주셨습니다. 7회까지 개최하면서 이천편이 넘는 단편영화들이 접수되었고 경찰과 시민들이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흐뭇한 이야기들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때만 해도 하루 5-6명에 불과했던 방문자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늘었습니다. (올 초 '영화 1987'의 흥행과 6.10 민주화운동 30주년도 방문객 증가의 이유였지만) 올해만 2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찾아주실 정도로 이 곳은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민의 공간으로 변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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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과 경찰관이 함께 인권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경찰청 인권아카데미도 이 곳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조효제 교수님과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을 비롯한 인권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첫 강연을 할 때만 해도 경찰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7년간 25회에 걸쳐 개최해온 경찰청 인권아카데미는 넓은 인권의 주제들을 아우르는 시민참여형 인권교육의 모델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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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 인권교육’을 시작으로 경찰교육기관, 경찰관서, 경찰박물관 등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 인권교육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인권교육 교재를 만들었고, 정부부처 중에서는 가장 먼저 인권영향평가제를 도입하여 경찰행정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남영동 청사를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경찰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리며 수없이 다짐하고 기도했습니다. 삼십년 후, 이 곳을 찾을 후배 경찰관은 우리 시대의 선배 때문에 부끄러울 일이 없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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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남영동 청사를 떠납니다. 퍽이나 복잡한 마음입니다. 이 공간이 더 의미있는 공간으로 다시 꾸려지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있을때 구석구석 한번이라도 더 돌아볼껄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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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의 요청이 있을때마다 안내하기 위해 수없이 오르내렸던 나선형 계단, 거의 매일 들러 보존상태를 확인했던 509호실, 515호실, 4층 박종철기념실, 1층 필로티 공간, 남영역과 맞닿아 있는, 음침한 별관 뒤쪽 공간, 청파동과 후암동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던 옥상, 주말 근무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정문 안내실, 흔적만 남은 테니스장, 봄과 여름이면 만개한 꽃과 녹음으로 더 없이 화사해지던 정원과 산책길, 어느 한 곳도 우리들의 시선이 머무르지 않았던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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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꼭 기억해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쓸고 닦고 가꾸던 시설관리 공무원들이 그들입니다. 그 분들의 노고가 이 공간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시설관리 실무자였던 조행정관님은 이 곳에서만 20년 넘게 일하셨습니다. 청춘을 바친 공간이라 그에게 남영동 청사는 분신과 같습니다. 명예퇴직을 할까 고민도 하셨지만 이 건물과 끝까지 함께 한다는 생각이 더 크셨다고 합니다. 짐을 꾸리며 시설 하나하나를 다시 돌아보는 조행정관님의 손에 밴 굳은 살이 이 공간을 온전하게 시민에게 돌려주는 오늘의 역사를 만드는데 얼마간 기여한 것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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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면서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그간 경찰이 관리했던 십여년의 시간들이 잊혀지고 생략되고 폄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입니다. 경찰의 잘못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원죄를 안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묵묵히 걸어왔던 경찰관과 공무원들의 소박한 꿈마저 비난받아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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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십여년의 기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고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돌봤습니다. 마지막까지 고 김근태 선생의 기념실을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턱 없이 부족했지만 경찰 안에 '인권'의 가치를 뿌리내리기 위해 땀흘려 일했습니다. 훗날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았을 때 그런 노력의 흔적들이라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경찰청 인권센터의 마지막을 함께 한 사람들의 이 진솔한 마음이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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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희는 남영동 청사를 떠나 한남동 임시 사무실에서 새롭게 출발합니다. 시민사회에 뿌리내린 더 건강한 민주경찰, 국민이 주신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성찰할 줄 아는 인권경찰이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경찰청_인권센터 #남영동_대공분실_시민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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