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영화속 경찰은 무식한 또라이 열혈형사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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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것없다>의 우형사(박중훈),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송강호), <공공의적>의 강철중(설경구), <와일드카드>의 방제수(양동근),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이션균), 그리고 이번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 모두 앞뒤 재지않는 의협심과 정의감을 가졌지만 수사의 적법절차엔 관심이 없고, 말과 행동이 매우 불량스럽고, 하나같이 주먹질을 잘하는 '형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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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마다 약간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다 이러한 설정들이 영화의 흥행에 큰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경찰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정도면 거의 도식화되어있다고 볼수 있다. 캐릭터의 죽음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배우마다의 연기력에 따라 감칠맛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설경구가 우형사역을 하거나 송강호가 서도철 역을 한다고 해도 배역의 기본 캐릭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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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심이나 정의감, 빼어난 주먹실력 같은 것은 액션영화의 주인공으로 반드시 필요한 설정일테고 적법절차를 가볍게 무시하거나 말과 행동이 무척 불량스러운 설정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일것이다. 그래도 영화마다 크게 다르지 않으니 보는 입장에서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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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닌 경우도 간혹 있다. <살인의 추억>의 과학수사를 신봉하는 서태윤(김상경)이나 <주홍글씨>의 이기훈(한석규) 같은 인텔리 경찰관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할뿐더러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는다. 그러니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하려 하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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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가 대부분의 경찰영화 주인공을 독식하는 것도 식상하다. '형사'는 그저 하나의 직책일 뿐 제복경찰관들보다 높은 지위가 아니다. 형사가 현실보다 과대평가되는 반면, 영화속 제복경찰관들은 하나같이 소심하고 비겁하거나 무능력하게 그려진다. 형사들이 승진을 위해 실적경쟁을 하고 승진을 하면 본청으로 발탁된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이다. 아주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본청에서는 수사를 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서도철(황정민) 같은 캐릭터의 형사가 승진해서 페이퍼워크하러 본청에 온다?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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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형사가 아니어도 경찰이 가진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교통경찰관이나 파출소 순찰경찰관, 경비경찰, 외사수사관, 사이버수사관 등 경찰의 영역이 넓은 만큼 개발되지 않은 이야기꺼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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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 다양하게 만들수 없을까. 우린 언제나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 테일러(제이크 질렌할), 마이크 자발라(마이클 페나)와 같이 인간적이면서 멋있는 순찰경찰관 캐릭터를 영화에서 만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