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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21. 2016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화 '아빠의 화장실'(2009) 후기>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며 재봉일을 배우는 딸과 전기세가 밀린 아내, 그리고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난한 아빠는 브라질과 가까운 우르과이의 멜로 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가진거라고는 자전거 한대 뿐인 아빠는 국경을 넘나들며 밀수 심부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어느 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멜로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아빠는 교황의 방문에 따라 온 마을에 구경오는 군중들이 넘쳐날 것을 기대하며 집 앞에 딸린 화장실을 개조하여 군중들에게 요금을 받을 궁리를 한다.  

화장실 사업만 성공한다면 자신이 사고 싶었던 오토바이는 물론, 딸아이의 학비와 아내의 전기세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아빠는 딸아이의 학비를 털어 어렵게 화장실을 짓는다.

교황 방문일에 맞추어 군중들에게 팔 생각으로 사업구상을 하는 건 아빠 뿐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20만이 몰려들거라는 소문을 양산하며 빚을 내 소세지를 수백인분 사들이고 수백명이 먹을 햄버거를 굽느라 난리를 피운다.

그러나 교황은 아주 간단한 축복의 말씀만 한 후 바삐 마을을 뜨고 그제서야 교황의 방문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정부의 이벤트였음을 알게 된 아빠와 마을사람들은 빈손으로 좌절한다. "노동은 살기 위해서만 수행되어서는 안됩니다." 라는 교황의 말씀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성스러워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티비에서는 교황의 은총이 가득한 날이라는 아나운서의 호들갑이 계속 이어지고 아빠는 티비를 향해 술병을 던진 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어간다.

영화는 목가적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위로 내달리는 자전거의 모습은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초원은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다.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은 빼앗길 것 없는 자전거 심부름꾼의 삥을 뜯고 티비는 교황을 팔아가며 혼란스러운 현실을 호도한다.

저널리즘이 실종된, 이런 곳에서 딸 아이는 아나운서의 꿈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자신이 아끼던 때묻은 라디오를 버린다. 뻔뻔한 정치와 종교가 지배하는 작은 마을에서 돈을 벌면 겨우 "빨래녹말과 전기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박하면서도 낙천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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