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不ON 문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너 Apr 21. 2016

이런 후기도 있다

영화 '대니 콜린스' 후기

1. 늙은 가수가 있다.


대니 콜린스, 얼굴 한가득 주름진 노인이지만 그는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는 표정으로 객석을 지긋이 응시한다. 40년 전 받았어야 했던 손 편지를 65세 생일이 되어서야 전달 받은 것이 억울할 법한 대니는 피아노 건반을 토닥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다독인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Hey Baby Doll>(안녕 귀염둥이)을 부르며 흥을 돋우는 팝스타 대니 콜린스다. 그러나 그는 40여 년 전 음악을 시작하던 젊은 날의 자신이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와 아직 남아 있는 날에 대한 다짐이 엇박자를 이루는 동안에도 대니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 전국 투어를 하면 노후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돈이 보장되지만 그는 다시 무절제한 과거로 돌아갈까 겁이 난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노래하길 원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제 막 썸을 시작한 메리(아네트 베닝 분) 앞에서. 여전히 설레는 청춘의 모습으로.


2. 전설의 배우가 있다.  


스크린에서 아직 그를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나이를 먹었지만 그는 겹겹이 쌓인 시간만큼 속 깊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굵은 주름을 움직이며 그가 만들어내는 표정은 성공 뒤로 감추어진 대스타의 쓸쓸함과 열패감을 빈틈없이 담아낸다. 사랑을 시작한 연인 앞에서는 한 없이 들떠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가도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손녀를 바라볼 때는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고 너그러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한다. 알파치노는 이 역할을 맡고 평소 록스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루었다고 흡족해 했다고 한다. 영화초반 무대 위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대니 콜린스의 모습은 록스타로 살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알파치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3. 가슴을 저미는 명곡이 있다.


존 레넌. 살아있는 전설의 이름. 세상을 떠난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명으로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다. 존 레넌의 명곡들을 영화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무려 10곡이나 되는 그의 음악이 쓰였다. 그것도 알파치노가 주연으로 열연하는 영화에서 말이다. 그의 대표곡 영화의 주요 장면들에 감성을 더해준다. 대니가 메리를 만나는 장면, 그가 잊고 있던 아들의 집을 찾아가손녀를 만나는 장면에서 'Love'의 선율이, 대니가 40여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존 레넌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는 ‘Imagine'이, 병을 앓고 있는 그의 아들과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Beautiful Boy"가 흐른다. 정말이지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그 외에도 'Nobody told me', 'Cold Turkey', 'Instant Karma' 등을 들을 수 있다. 특히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Instant Karma'는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들을 필요가 있다. 그 노래 자체가 이 영화의 주제다.


4. 다시 만나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힐튼호텔의 지배인 역할을 맡아 대니콜린스의 재활을 지켜보며 힘을 돋게 해준 뮤즈는 아네트 베닝이 맡았다. 나이를 먹어도 지적이면서 단아한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대니의 매니저이자 절친으로 나온 프랭크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사운드오브 뮤직에서 칼 같이 엄격한 트랩 대령 역할을 했던 배우다. 중후함이 뚝뚝 떨어진다.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다 보고 나서 출연진 소개를 보고서야 알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듯해서 소개한다.


5. 더럽게 성질 급한 사람들이 있다.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비척비척 일어나 나가려하던 사람들이 잠시의 암전에 이어 영화의 배경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이어지자 나가다 말고 시야를 가로막고 선다. 음악은 계속 흐르고 여운을 즐기기 위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던 나같은 사람들은 당혹스러울수 밖에... 영화가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그들에게는)별 대수롭지 않은 부연이 끝나자 다시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럴 거면 영화는 왜 보러 온 걸까. 성질이 급하면 빨리 나가 남은 사람 방해나 하지 말자.
.

매거진의 이전글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