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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13. 2019

성숙한 未성년과 未성숙한 성년

영화 <미성년(2018),  Another Child> 후기 

(영화의 줄거리가 포함된 글입니다)


문학을 비롯하여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예술에 불륜은 흔한 소재다. 대립과 갈등, 화해와 용서라는 진부한 구도를 통해 극단적이고 미묘한 심리묘사가 가능하다. 영화 <미성년>의 구도도 다르지 않다.


영주(염정아)와의 사이에 딸 주리를 둔 대원(김윤석)은 자기보다 열살은 더 어린 이혼녀 미희(김소진)와 불륜을 저지른다. 대원과의 불륜으로 임신을 한 미희는 하필 주리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윤아의 엄마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더럽게 꼬여버린 인물들과 풍비박산이 난 두 가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미성년>은 이 뻔한 갈등구도를 선정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미성년인 두 딸이 상황을 수습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또 다른 의미로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another child)들을 나열하고 대비시킬 뿐이다.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의 아빠와 엄마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서로를 미워하지만 조산으로 인큐베이터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남동생을 중심으로 화해한다. 반면 두 미성년 주변을 둘러싼 어른들은 하나같이 대책이 없다.


대원은 딸을 피해 달아나고 폭주족에게 구타당하고 들켜버린 비밀앞에 무릎꿇고 매달리는 무기력한 어른이다. 대원의 불륜상대 미희는 딸 윤아에게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대성통곡을 하는 여자다. 미희와 이혼한 윤아의 아빠는 도박에 빠져 부양능력과 의지를 잃은지 한참된 폐인이다. 학교 선생님은 학생을 편애하고 험담한다. 윤아가 일하는 편의점에 손님으로 온 불륜커플은 찌질한 겁쟁이다. 미희와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모녀는 타인의 불행을 즐기며 뒷말하고 간섭하기 좋아한다. 그나마 가장 어른답게 묘사되는 주리 엄마 영주(염정아) 마저도 아버지 하느님에게 매달리는 또 다른 아이일 뿐이다.

자신을 부르는 딸을 피해 달아나는 대원(김윤석 분), 대원은 책임을 회피하는 미성년이다.   


한자의 뜻으로만 보면 불륜(不倫)은 무리가 따르는 규칙, 또는 무리에서 벗어나는 (부도덕한)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배우자 있는 남녀가 다른 이성과 성교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남녀의 일이기 때문에 일단 불륜관계가 되면 미희의 말처럼 ‘생각대로 되는게 아니’다. 어느 지점을 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지만 미성숙한 인간이 과연 그걸 지킬수 있을까. 결국 절제하지 못한 미성년들은 퇴행한다. 코흘리개들이나 즐길법한 놀이동산에 가서 셀카를 찍고 서로를 ‘마지막 사랑’이라 부르며 놀이동산만큼 조악한 모텔로 숨어든다.


모두가 성숙하지 못해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는 건 그래도 때가 덜 묻은 아이들이다. 비록 법적인 성년이 아니기에 현실적인 벽이 있지만 그들은 ‘니네 그러다가 큰일 난다’는 선생님(기성세대)의 경고를 무시하고 학교(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질서)를 탈출한다. 두 아이가 동생의 분골이 든 작은 상자를 들고 학교를 뛰쳐나오면서부터 영화는 현실의 영역에서 상징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아이들은 동생의 시신을 구출하고 자신들의 몸 안에 장사지냄으로써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경이 된 놀이동산은 퇴행의 공간에서 구원의 공간이 되는 셈이다.

미성년들의 놀이동산은 퇴행의 공간에서 구원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주조연 할 것 없이 다들 한몫한다. 김윤석이 친구의 펜션을 찾아간 시골에서 만원을 삥뜯는 중년여성을 연기한 배우가 누군지 궁금하다. 최근 본 영화 중 최고의 씬 스틸러다. 내공이 엄청난 배우겠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페친이 이정은 배우라고 알려줬다. 역시 짧지만 대단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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