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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21. 2019

더 없이 미국적인 전기영화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2018)> 후기

진보적인 판결로 역사를 바꿔온 팔십대 여성대법관을 보고 젊은이들이 환호한다. 대중들은 그를 'Notorious R.B.G'라고 부른다. 흑인 힙합 뮤지션 Notorious B.I.G.의 패러디다. 그 역시 힙합뮤지션과 자신을 비교하는 걸 즐긴다. 어딜가나 환영받고 그의 말에 귀기울일 뿐 아니라 같이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달라고 할 정도다.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할머니 노법관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녀의 자서전 제목도 Notorious R.B.G다.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2018)>는 미국의 여성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부르클린에서 태어난 루스는 미국 전역에 매카시즘 광풍이 휩쓸던 시기에 로스쿨을 진학한다.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던 루스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법률가의 꿈을 이룬다. 아무도 여성 변호사를 채용하지 않았던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여성의 권익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며 백인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지배층 분위기에 균열을 내 간다.

코넬대학을 다니던 루스의 모습. 그녀의 남편 마틴은 그녀를 '아담하지만 총명했던 여인'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루스가 선임하고 승소로 이끌었던 사건을 하나씩 소개한다. 사건의 당사자, 관련자, 루스의 가족들이 차례로 등장해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루스의 인터뷰와 법정 발언이 덧입혀지는 식이다. 영화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 루스의 모습을 오가며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말미에 그를 대법관으로 임명한 클린턴 대통령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클린턴은 너무 나이가 많다는 여론(당시 61세)이 있던 루스를 백악관으로 불러 깊은 대화를 나눈 후 그를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훗날 클린턴은 루스를 대법관으로 임명한 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여긴다.

대법관으로 임명되고 선서를 하는 긴즈버그

영화에서 짧게 보여진 청문회 장면은 더 없이 인상적이었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후보자가 어떤 판결을 해왔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묻고 경청한다. 후보자는 충분하게 주어진 발언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면서 검증받는다. 이런식의 청문회는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한다. 후보자의 소신이나 신념 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흠집찾기에 혈안이 된 청문회, 카메라 샷 한번 더 받아보려고 악을 쓰고 호통을 치는 천박한 청문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영화 속 청문회는 경이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루스가 대법관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 섰던 동료 대법관과 문화와 예술을 기반으로 대화하고 친교하는 모습 역시 무척 신선했다. 진보와 보수는 헌법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입장의 차이일 뿐 두 사람은 동료 대법관으로서의 서로를 존경하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저력이 어디에 있는지 이 영화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많은 자료영상과 증언들이 포함되었지만 그 것들의 방향이 오로지 루스를 향하고 있기에 영화는 더 없이 간결하다. 루스의 삶은 미국이 만인의 평등을 실현해가는 위대한 과정을 실증한다. 어쩌면 영화는 그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저력을 자랑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를 향한 청년층과 언론의 반응이 지극히 미국적이다. 그러고 보면, 불가능에 도전해 온 한 법조인의 삶을 미국적인 영웅담으로 각색한 영화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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