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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21. 2016

몸으로 읽는 독서일기

뒤집기와 굽기

새벽까지 잠이 안와 뒹굴다가 아침일찍 성묘를 하고 와서 다시 뒹굴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이틀이 더 남았으니 더 다양한 자세로 뒹굴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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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소파에 'ㄴ'자로 기대어 책을 보다가 'ㅗ'자 자세로 장기전에 들어가게 되는데 팔이 떨려오고 눈이 아파오는 시점이 되면 뒤집어야 한다. 이렇게 잘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생후 6개월 전후로 어렵게 익힌 뒤집기 기술을 오랜 세월 반복 숙달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복이 최고의 학습이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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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고 나서도 힘들때는 굽기에 들어간다. 전신 마비감이 올때까지 구워야 한다. 바닥에 신체의 모든 부분이 자국으로 남을 때까지 굽는다. 소파가 불편하면 침대로 가서 구워도 되는데 침대에서 구울때는 맥주와 과자부스러기를 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미처 다 굽지도 못하고 아내의 잔소리에 혼비백산 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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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두번의 뒤집기를 하며 알랭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와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었다. 알랭드 보통은 이름부터 친숙하다. 알랭드 롱 같은 배우들은 너무 잘나서 사실 정이 가지 않는데 알랭드 보통에겐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든다. 알랭드 숏이라고 말장난 하지 말자. 난 보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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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는 에세이집이다. 9편의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 문장은 경쾌하고 통찰은 빛난다. 흔히 놓치고 지나쳤던 사물과 사실에 대한 생각들을 차곡차곡 잘 보관해둔 서랍장을 열어본 기분이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그가 관심을 보이는 일들에 반응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늘의 음영에, 한 사람의 얼굴의 변화무쌍함에, 친구의 위선에, 이전에는 우리가 슬픔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으로부터 밀려오는 축축하게 가라앉은 슬픔"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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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한 여인의 심리적 변화를 그리고 있다. 뭔가 베로니카 하면 이중생활을 할 것만 같은 에로스러운 상상을 하게 되지만 일단 그런건 좀 바지춤에 넣어두고 읽는게 좋겠다. 스물네살의 나이에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느낀 베로니카는 의미없는 일상을 견디기 어려워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은 그녀의 삶에 마지막을 장식할 탈출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죽음을 실감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 그녀는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결론을 알고 읽었지만 읽는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질 만큼 문장도 좋고 구성도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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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를 다녀오면서 충분한 카페인을 섭취했다. 말똥말똥한 상태로 전신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침대에 내 신체의 모든 부분들을 선명히 남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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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읽는 독서체험담 : 뒤집기와 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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