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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Sep 14. 2019

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것들

영화 '예스터데이'(2019, 대니보일) 후기

교통사고로 앞니 두개를 잃은 무명가수 잭 말릭이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부를 때 사람들은 그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대체 그 감동적인 노래를 언제 지었니?. 잭은 친구들의 장난 쯤이라고 생각하지만 찜찜한게 한두개가 아니다. 그의 매니저이자 오랜 친구 앨리는 비틀즈의 노래 'When I'm sixty four'의 익숙한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고, 펩시를 가져다 준 잭의 엄마는 코카콜라를 알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비틀즈와 코카콜라, 시가렛과 같이 인류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대표적인 문화코드들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사라져버린 잭의 앞니처럼 말이다. 전 지구를 암흑으로 만들었던 12초의 정전 이후, 세상에서 비틀즈의 명곡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잭 뿐이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된다면 잭 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잭은 비틀즈의 노래들을 자신의 자작곡이라고 속여 천재뮤지션 행세를 하고 미국의 거대 기획사는 그런 잭을 캐스팅한다. 갑자기 월드스타가 된 잭에게 오랜 친구 앨리는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존재다. 오랜 기간 붙어다니던, 그저 남매같은 관계라고 생각해왔지만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한편, 콘서트를 마친 뒤 잭의 숙소에 낯선 노인 관객 두명이 찾아온다.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 인형을 가지고 나타난 두 사람은 잭과 같이 비틀즈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잭은 이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느 시골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는 78살의 존레넌과 만나게 된다. 존레넌은 잭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더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비틀즈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 잭이라고 하더니 왜 갑자기 비틀즈의 존재를 기억하는 또 다른 노인팬을 등장시키고 초라하게 늙은 존 레넌을 등장시켰겠는가. 노인팬과 존레넌은 주인공의 양심을 자극하는 대천사와 메시아라고 본다. 따라서 이 장면은 잭의 꿈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거짓된 삶의 무게로 고통받아왔던 잭. 잭은 수만명이 운집한 무대 위에서 자신이 천재 뮤지션이 아니라 비틀즈라는 위대한 음악가의 노래를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앨리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 장면 이후는 누구나 예상하는 동화의 결말 같다.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잭과 앨리의 일상이 이어진다. 거대한 무대가 아니라 초등학생들 앞에서 비틀즈의 노래 "Ob la di, ob-la-da"를 열창하는 잭의 행복한 표정을 비추는 카메라. 행복은 노래 "Ob la di, ob-la-da"의 가사 속 데스먼과 몰리처럼 솔직하고 평범하게 지속되는 삶 속에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영화 <예스터데이>는 모두에게 소중했던 존재(비틀즈)를 상실한 세상에서도 그 가치를 기억하는 한 사람만 있다면 다시 그 존재의 가치가 부활했던 것 처럼 당신 곁에 있지만 당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못하는(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를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위해 비틀즈의 히트곡들을 끼워넣고 미적지근한 로맨스와 영국식 코메디를 얼버무려 러닝타임 두시간을 꽉 채웠다.


솔직히 어바웃타임과 러브액추얼리와 같은 영국식 로맨틱 코메디의 연장선에 있겠거니 기대하고 갔는데 기대만큼의 재미와 감동은 아니었다. 영국과 북미에서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빅 히트를 하지는 못할 것 같은 예감. 그래서 스토리나 구성을 자세하게 써봤다. 다음주(18일) 개봉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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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스터데이'(2019, 대니보일)후기

#영화후기 #무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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