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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Sep 29. 2019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후기

처분을 위한 독서일기 1

연탄개스를 마시고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삼학년이었다. 어른들이 우는게 슬퍼 따라 울었다. 지금도 하얀 천 아래 장작처럼 마른 발목을 내놓고 누워있던 할머니 마지막 모습이 기억난다. 상여행렬 앞에 영정사진을 들고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른 기억도 있다. 고등학생때 맞은 할아버지의 죽음이 그랬다. 날이 좋아서 고인이 복받은거라고 한마디씩 했지만 그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비오는 날 이태원에서 감전사했던 고등학교 친구의 죽음도 갑작스러웠다. 영정 앞에 절을 하면서도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학시절, 나에게 유독 예의를 갖춰 다나까 말투를 쓰던 후배는 술을 마시고 바다로 뛰어들어 세상을 떠났다. 경찰학교 단짝 친구 광재가 임용 두달만에 교통사고사로 세상을 등질때는 너무 황망하여 헛말이 나올정도였다. 녀석의 몫까지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다짐 덕에 어려운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

버스에 치여 응급실로 실려간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사고현장이 경찰관으로 겪은 첫번째 시신수습 경험이었다. 길 바닥에 비산된 잔해를 수습하며 속으로 몸서리를 쳤다. 헌인릉을 지나 성남가는 도로에 전복된 차량에 깔린채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가던 택시기사의 떨리는 손짓을 기억한다. 손짓은 점점 잦아들었다. 아저씨 구급차가 오고 있어요. 정신 잃으시면 안되요. 말을 계속 시켜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대로 나는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다. 열다섯평 영세민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변사 현장은 몸서리 칠만큼 지독했던 냄새만 기억난다. 그래도 나는 경찰관 치곤 끔찍한 사건을 많이 겪지 않았다.

돌아보니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죽음을 일상에서 밀어내버렸다. 납골당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동네 주민들이 봉기하여 거리마다 플래카드를 붙이고 연일 시청으로 몰려가는 모습을 보며 죽음이라는 인생의 한 부분이 몇푼 집값만도 못한 처지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혐오시설이라고 했다. 죽음은 일상에서 멀어졌을 뿐 아니라 이젠 혐오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죽음을 성찰하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에는 이런 문화적 천박함이 있었다.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는 서울대학교의 교양강좌 <죽음의 과학적 이해>를 정리한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개인적인 경험들이 자꾸 떠올랐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공부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품격을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책에는 매일 죽음과 마주하는 법의학자로서 저자의 의지와 사명감이 절절히 읽힌다. 과학적 현상으로써의 죽음, 죽음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병리학적 현상으로써의 자살, 생명윤리적 관점에서 본 뇌사와 존엄사의 문제와 같이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이 소개되고 마지막 장에는 인생의 한 부분으로 또 삶의 마지막 스토리로써 죽음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정리한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는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는 격언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인문과학적 견지의 죽음 지침서라고 해야 할까. "서울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들을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중에 하나다.


<처분을 위한 독서일기>는 소장도서를 줄이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야 하지만 책과 이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책을 많이 가지고 사는것도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장을 비우는 대신 브런치를 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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