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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Nov 16. 2019

상처가 만든 숭고한 사랑 이야기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시사회 (제29기 경찰청 인권아카데미) 후기

김귀덕. 1955년, 열세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소녀 이국 땅에 낯선 이름의 묘비명만 남긴 그녀는 왜 폴란드에 묻혀야했을까. 모든 이야기는 이 소녀의 무덤 앞 작은 비석에서 시작했다.


1.

90년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했던 배우 추상미씨. 그녀는 결혼할 무렵 배우로서의 활동을 접었고 아이를 낳았다. 조금 늦게 찾아온 아이를 보며 그녀는 모성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때나 눈물이 쏟아졌고 밤마다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을 꿨다. 산후 우울증. 누구나 겪는 일이라지만 그녀는 유독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북한의 꽃제비 영상을 보게 된 그녀는 분단이라는 현실의 냉혹한 의미를 깨닫는다. 폴란드로 보내진 전쟁고아 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이 무렵. 그녀는 이 놀라운 역사적 사실을 극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2.

폴란드로 보내진 1,200명의 전쟁고아와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현지에서 생을 마감한 김귀덕의 이야기. 배우 추상미씨가 연출하는 첫번째 극영화 <그루터기들>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는 이 영화에 탈북 청소년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오디션을 했다. 실감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는 정작 탈북 청소년들을 잘 알지는 못했다. 마침 영화의 리서치를 위해 폴란드를 방문하기로 한 추상미씨는 영화 속 김귀덕의 친구 역할을 맡기려 했던 탈북청년 이송씨에게 동행을 제안한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그루터기들>의 감독 추상미와 배우 이송이 폴란드 현지에서 리서치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담은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3.

애초에 다큐멘터리로 의도하고 만든 영상이 아니다. 리서치를 하며 어느 순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를 갖게 된 영화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세세한 이야기를 나열하거나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더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앞에서 부끄럽고 당혹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누구도 예외가 아닐 것같다.


영화<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두개의 스토리 라인이 겹쳐있다.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과 그들을 사랑으로 보듬었던 폴란드 선생님의 이야기가 하나, 그 역사적 사실을 뒤쫒아 폴란드로 건너간 영화감독 추상미와 탈북청년 이송이 만들어가는 갈등과 교감의 이야기가 또 다른 하나다.


4.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북한은 자신들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발생한 전쟁 고아들을 러시아, 루마니아와 같은 동구권 사회주의 동맹국가들에게 위탁한다. 북한이 일시라도 점령했던 지역의 고아들이니 사실 팔도의 아이들이 다 모였을 터. 아이들은 북한의 전후 재건이 한창이던 1958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개중엔 남한이 고향이던 고아들도 있었다고 한다.


폴란드도 그런 이유로 전쟁고아들을 맡게 된 나라 중 하나였다. 당초 러시아로 보내졌던 1,200명의 전쟁고아들은 건강이 몹씨 좋지 않은 상황에서 폴란드로 재이송된다. 폴란드의 프와코비체라는 마을에서 격리된 채 보호를 받게 된 고아들은 이 곳의 선생님들과 부모 자식 이상의 인연을 맻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참혹한 대량살육의 현장을 보며 성장했던 폴란드 선생님들은 피부색도, 말도 다른 북한 고아들에게서 자신들의 유년을 발견했다고 한다.  고아들에게 필요한 게 보육에 필요한 커리큘렴이 아니라 부모와 형제였다고 회상하는 선생님들은 이제 아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 1951년부터 아이들이 다시 북으로 돌아간 1958년 까지 보육을 담당했던 프와코비체 보육원 원장 요제프 선생님은 지금도 헤어진 고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는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5.

추상미 감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눈물을 쏟을 수 있을까. 그토록 숭고한 사랑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건 이 영화를 세번 반복해서 본 나 역시 그랬다.


6.

영화속 잠시 스치는 장면이 있다. 추상미 감독이 리서치 과정에서 노트에 적는 글귀 "상처의 연대".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있다면 단연 이 짧은 문구다. 북한 고아들의 상처를 알아보고 자신의 상처를 투영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폴란드 선생님들의 마음과 탈북 청년 이송의 아픔을 감지하고 그녀를 위로하며 마음을 맞댄 추상미 감독의 마음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아닐까. "상처의 연대"는 영화가 말하는 보편적 인류애나 인권의 거창한 문제 뿐 아니라 일상에서 상처입은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도 적용할 수 있는 주제 아닐까. 우린 너무 오랜 시간 자신의 '상처'에만 눈물흘리며 남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영화의 엔딩씬이 오래 남는다. 동독과 서독을 가르던 철의장막을 사이에 두고 추상미 감독과 이송 배우가 천천히 걸어오다가 철망이 끊어지는 지점에서 밝게 웃으며 만나는 장면이다. 우리는 매 순간 나와 다른 존재와 만나고 부대끼며 산다. 그러기에 다름을 극복하며, 매 순간 작지만 의미있는, 통일을 이루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는 시간은 다른 환경에서, 다른 문화권에서, 서로 다른 존재로 살아가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야 할 우리 형제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7.

제29회 경찰청 인권아카데미에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초청했다. 영화를 보고 추상미 감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경찰관과 시민들이 꽤 많이 모였다. 며칠 전부터 행사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을 경찰청 인권센터 건물에 내걸었기 때문일까. 홍보를 해도 자리를 채우기 쉽지 않았던 여느때와 확실히 달랐다. 행사장 분위기도 좋았다. 관공서 특유의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조명을 이용해 조도를 낮추고 분위기를 입혔다. 방문해 주신 시민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경찰이 꼭 딱딱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시민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알리고 싶었다.


8.

2012년에 시작하여 벌써 29회를 맞은 경찰청 인권아카데미는 인권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좌와 문화 컨텐츠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는 행사입니다. 그간 조효제, 오창익, 차병직, 오찬호, 김홍미리, 홍성수 등 인권 전문가 뿐 아니라 이유리 작가, 장준환 감독, 김경형 감독, 오동진 평론가, 은유작가 등 많은 문화 예술인을 초청하였습니다. 문화를 통해 인권을 배우는 자리로 키워가겠습니다. 앞으로도 경찰청 인권아카데미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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