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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Nov 25. 2019

그림? 네 마음대로 그려봐

주말에만 그리는 초보 작가의 그림일기 -1

어쩌다 보니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됐습니다. 돌아보니 한 순간이었네요. 언제부턴가 종류별로 붓과 아크릴 물감을 사들이고 이젤과 캔버스를 사들이더니 최근엔 유화물감까지 샀습니다. 작업실로 쓰는 작은 다락방이 온통 미술도구 천지입니다.


작년 이맘때만해도 스케치북 하나에 펜하나로 족했던 사람입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도 없거니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다는 건 딴 세상 이야긴줄만 알았으니까요. 가끔 손바닥만한 스케치북이나 업무노트에 낙서수준의 드로잉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린시절 교과서 빈칸을 채우던 버릇의 연장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제법 잘그린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언젠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꿈이 야무졌던거죠. (꿈이라도 야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틈나는대로 이렇게 그립니다. 끄적끄적 낙서가 습관입니다.


그러던 중 2018년 겨울을 통과하면서 많이 아팠습니다. 아픈 와중에 내 밑바닥에 엄청난 양의 억압과 그 억압에 저항하는 욕망이 고여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었지만 너무 오랜 기간 누르고 살았던 탓에 그것을 뒤덮고 있는 묵은 이야기들, 말할 수 없었던 삶의 파편들이 검은 쓰레기더미처럼 가득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내 욕망은 은폐되어 있었고 억눌러져왔습니다. 중년 사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속엣 이야기를 할 사람도 기댈 곳도 없습니다. 몸은 가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저에게 찾아온 질환은 그런 몸의 고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인모를 두드러기로 얼굴이 퉁퉁붓고 위경련 때문에 자다가도 실려가는 일을 몇차례 겪으며 내 욕망과 솔직하게 대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드러기는 면역체계 문제라고 할 뿐 정확한 이유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피부과에서 내과로 내과에서 한의원으로 전전긍긍하는 사이 만성 두드러기로 자리 잡아버린거죠. 몇 달을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으로 버텨야했습니다. 가급적 운동을 하지 말라는 권유에 따라 운동을 접었더니 몸무게가 3kg이나 늘었습니다. 우울했습니다. 날이 풀려 봄은 오는데 약을 먹지 않으면 발진처럼 올라오는 두드러기가 날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죠. 평소처럼 집안청소를 하고나서 산책을 나갔다가 동네 상가에서 <성인미술교실>이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핏 미술학원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2층 계단입구가 일반 입시미술학원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상호만 얼핏 확인하고 집에와서 검색을 해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등록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아뜰리에였습니다. 돈을 내고 공간을 공유하는 작가들도 있었고 그림을 배우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화로 문의를 했더니 대뜸 자기네 미술교실은 매우 엄격하게 회원관리를 한다는 둥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업군이 회원중 다수라는 둥,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경계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작 생업 같은 걸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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