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너 Nov 27. 2019

미술학원, 그 오래된 꿈 이야기

주말에만 그리는 초보작가의 그림일기 -2 

미술학원 이야기를 하니 고등학교 시절 생각이 나네요. 고등학교때 미술학원을 다닐 뻔 했거든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사실 미대에 갈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성적도 그저 그랬던 저에게 미련을 떨치지 못한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를 한답시고 꽤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 같습니다. 머리를 삭발하다시피 밀어버리던 삭막한 학교에서 저는 전형적인 부적응자였습니다. 세살 터울의, 법과대학을 다니던 누나의 책꽂이에서 운동권 입문용 사회과학책을 꺼내 읽고 황지우나 박노해 같은 시인들의 시집을 훔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그런 책에서 배울게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 재미있었습니다. 습작이랍시고 시나 단편 소설을 끄적이던 때도 그때입니다. 

정호승의 시집 "서울예수"에서 가장 좋아했던 시 -슬픔은 누구인가- /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렸던 삽화 

반면, 수업시간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교과서 밑에 엉뚱한 시집을 깔고 읽다가 혼난적도 여러번이었습니다. 성적이 잘 나올리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학력고사가 일년 앞으로 다가올 즈음, 학교 미술부 선배에게 미대 갈 생각은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순간 멍 했습니다. 그 날로 그림 한 장을 그려 미술선생을 찾아갔죠. 수업엔 관심이 없고 아이들 괴롭히는데만 이골이 난 미술선생에게 저 따위가 관심 대상일리 있었겠습니까. 제 그림을 본 선생님은 미술학원을 다니지 왜 나한테 왔느냐며 핀잔을 주고는 눈도 마주치질 않았습니다. 그 날로 혼자 미대입시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보다 하고싶지 않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명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놈이었죠. 그렇게 한두달쯤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러다간 죽도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끝에 어머니께 미술학원을 보내주면 안되겠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렇게 미술학원과의 첫 인연이 시작되었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았겠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미술학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느닷없는 진로변경 요구에 며칠을 고민하시던 어머니는 시내에 있던 미술학원엘 혼자 다녀오셔서는 다시 생각해보면 안되겠느냐고 최후통첩을 하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 말을 어겨본 적이 별로 없던 저는 고집을 세워 하고싶은 대로 할 깜냥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미술학원은 저에게 잠시 스쳐가는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사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저에게 미술학원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열아홉살때 느꼈던 설렘을 느끼는거니까요.  


아, 쓸데 없는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야겠네요. 


그렇게 미술학원을 찾다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적당한 학원을 발견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주말 세시간, 자신이 원할때 가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 가끔 선생님이 그림 기법을 봐주는 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죠. 처음 학원을 찾은 나에게 선생님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그때까지 들어본 질문 중에 가장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한참 뜸을 들이며 생각을 하다가 가끔씩 끄적이던 유일한 그림이 펜그림이라 그냥 펜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둘러댔습니다. 선생님은 펜그림 전에 형태잡는 연습을 먼저 하는게 좋다고 했습니다. 무언가 체계적인 배움의 세계로 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기쁨은 그게 끝이었습니다. 연필 드로잉을 하게 되었는데 연습용 화집에 있는 사진 한 점을 똑같이 그려보는 것이 첫 수업의 내용이었습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 네 마음대로 그려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