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 -2 (이태원을 걷는 구보씨)
한남대교를 건너자자마 서는 첫번째 버스 정거장에 내리면 육교가 하나 보인다. 매일 그 곳을 건너 다니지만 육교위에서 미군부대 방향으로 멀리 펼쳐진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한 풍경에 가끔 압도될 때가 있다. 초여름의 코발트빛 하늘도 좋지만 저녁 어스름 해가 질 무렵 온통 붉은 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이 더 신비롭다. 그런 날이면 다닥다닥 산자락 위로 게딱지처럼 들어찬 한국식 다세대 주택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슬람 성전의 조화가 더 아름답다.
사람들은 이 곳을 한남 재개발지구라고 부르기도 하고 보광동, 우사단로와 같이 행정구역명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냥 이태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가장 많다. 사실 이태원이라는 지명은 외국문화가 뒤섞인 이방인들의 거리로 알려져 있지만, 재벌급 부자들이 산다는 고급주택가, 외교관 사저, 카페, 이국적인 음식점과 갤러리, 클럽, 트랜스젠더바, 시장, 다세대주택가 등 전혀 섞일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몰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냥 아파트 천지인 다른 곳과 멀리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섬 같다고 해야 할까.
이태원을 산책할 때는 항상 경사에 대비해야 한다. 경리단길이나 한강진역에서 남산방향으로 오르는 길이 전부 경사로인데다가 그 반대편 제일기획빌딩이나 이태원역에서 한강방면을 향해 난 길도 경사를 피할 수 없다. 이슬람 사원은 이태원역에서 우사단로를 따라 걷다보면 우측 골목 사이에 나타난다. 두 팔을 든 채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랄까. 하필이면 이방인들이 모인 그 동네에서 그것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자세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이슬람 사원은 이태원이라는 장소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길의 독특함은 이슬람 사원의 아우라 때문만은 아니다. 이슬람 사원에서 700미터쯤 떨어진 곳에 한광교회가가 이 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더 유니크하게 만든다. 불과 일킬로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마주 서 있는 기독교 예배당과 이슬람 성전이라니. 이런 풍경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풍경 아닐까. 차별과 배제에 익숙한 땅. 이방인들이 모여 어우러진 공간에 그것도 가장 낙후된 산동네를 사이좋게 지키는 교회와 모스크! 틈 날때마다 서울의 곳곳을 걷지만, 이 곳만큼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장소도 흔치 않다.
이슬람성원은 화창헀던 4월 찍은 사진을 기초로 그렸다. 육교에서 바라본 풍경을 세로 프레임으로 잘랐고 하필 신축빌라가 많은 지역이라 익숙하지 않은 세부묘사에 애를 먹었다. 근경과 원경의 터치를 다르게 하려 노력했고 하늘과 맞닿은 부분은 애써 묘사를 하기 보다 느낌만 주려고 했다. 파스텔톤 하늘이 썩 매력있다는 평을 받은 그림이다.
한광교회쪽은 조금 더 한국적이다. 주택 하나하나를 보고 그린다기 보다 적벽돌 일색인 주택가를 덩어리로 보고 느낌을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그렸다. 이 장면은 8월 한여름에 찍은 사진을 기초로 그렸다. 창문을 흘러내리는 느낌으로 그리려고 했고 전체적으로 밝지만 우울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이슬람 사원과는 확연히 다른 계절감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교회와 모스크를 한 프레임에 놓고 그릴 궁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