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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Dec 22. 2022

겨울 햇볕

디지털 드로잉 작업

“겨울 햇볕”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군데군데 덜 녹은 눈의 흔적이 남은 연병장에 퍼렇게 머리를 깎은 청년들이 노역을 마친 죄수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여기저기 기침소리가 요란했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딱 10분. 휴식이라기보다 대기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휴식을 명한 조교는 시혜를 베푸는 영주처럼 긴 모자챙 밑으로 실눈을 뜨고 병사들을 감시했다. 하늘이고 바람이고 모든 게 정지된 것 같았다. 나는 다시는 햇볕을 보지 못할 비극적 운명이라도 맞은 것처럼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온몸으로 빛을 받아들였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이었기에 한 줌 햇볕이 더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그 해의 겨울은 유독 길었고 휴식 시간 또한 인색했다. 전역 후에도 겨울만 되면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민들레 식당 서영남 수사님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 해 겨울 햇볕 아래로 되돌아갔다. 물론 중년 사내의 머릿속에 남은 군 생활의 잔상을 사진 속의 사내들과 비교할 수 없다. 군대가 아무리 힘든 경험이라고 해도 결국 돌아갈 일상이 보장된 곳 아닌가.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무료 급식소에 줄을 서야 하는 사내들의 출구 없는 상황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날씨는 연일 최저기온을 갱신하고 고금리에, 인플레에 경제 상황도 최악이다. 솜 죽은 패딩 하나로 온몸을 파고드는 냉기를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내들의 표정에는 옅은 웃음이 묻어난다. 몸은 잔뜩 웅크리고 있어도, ‘든든한 한 끼 밥으로 속을 채우고 나면 힘이 솟지 않을까?’ 마치 그렇게 마음먹은 것 같은 표정이다. 한 줌 햇볕에 몸을 맡긴 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내들의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본다. 고작 한나절, 한 줌에 불과하지만 겨울 햇볕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차별 없이 어루만져주는 자연의 복지다. 우리에게 든든한 희망이 되는 한 끼의 밥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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