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랑스 영화처럼>(2016 신연식) 후기
프랑스 영화에 익숙하지 않다. 어쨌거나 나는 할리우드의 너른 품 안에서 자랐고 그마저도 영상문화보다는 활자문화에 더 익숙한 시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마치 프랑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지명이라기 보다 고급하고 추상적인 '취향'의 이름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면, 고급스럽지도 않고 추상에도 문외한에 가까운 내가 프랑스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프랑스 영화처럼>이라는 말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확실히 '나이지리아 영화'나 '코트디부아르 영화'(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와 같은 말 보다는 훨씬 친근하게 느껴졌고 <미국영화>나 <홍콩영화>보다는 예술적으로 들렸으며 <한국영화>보다는 난해하게 느껴진다.
신연식 감독의 <프랑스 영화처럼>은 가벼운 마음으로 볼수 있는 영화다. 어디가 <프랑스 영화>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다루는 섬세한 시선을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영웅이나 악당이 등장하지 않고 죽을 고비를 넘긴 영웅이 정의를 실현하는 해피엔딩이 아닌 것만으로도 <프랑스 영화처럼>은 미국영화보다는 프랑스 영화에 가까운게 확실하다.
네편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관된 주제로 묶어놓지는 않았다. <프랑스영화처럼>은 네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자유분방한 여사친을 둔 남자는 썸도 사랑도 아닌 지점에서 어항 속 물고기 같이 관리 당하는 중이다. 그는 여동생으로부터 "프랑스 영화처럼"살지 말라는 조언을 듣는다. 그저 여사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늘 질질끌려다니던 남자라면 "프랑스 영화"같은 사랑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주변만 빙빙 돌며 감정을 피로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뚜렷한 스토리를 바라면 안된다. 그냥 인생의 한 지점을 포착한 스냅사진 같은 이야기들이다. 세번째 에피소드에 출연한 남자(미드스타 스티븐 연)가 말했듯 네편 모두 "아끼면 똥"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죽음이나 사랑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태도는 여전히 진중하다. 시스타의 다솜이나 포미닛의 전지윤 같은 친숙한 아이돌스타를 내세우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건 신인들의 타고난 연기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감독의 연출능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험정신이 강한 작품을 내놓고 늘 이프로 부족함 대중성 때문에 고민하던 소설가가 살짝 대중성을 노리고 쓴 단편소설집 같은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