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팬티 속 비대해진 자의식의 초상
캘빈 클라인. 듣기만해도 괜히 허리가 곧추서고, 없던 복근이 울끈불끈 솟아나야 할 것만 같은 이름이다. 세상엔 이름만으로 사람을 벌거벗기는 브랜드가 몇 개 있는데, 캘빈 클라인은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다. 그걸 입는 순간, 아니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종으로 진화했다는 달콤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가끔 훌륭한 인류가 되었다는 희열을 주체하지 못해, 속옷을 바지 위로 꺼내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내가 영화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그런데 이 고매한 이름을 가만히 뜯어보면, 슈퍼맨이 입기엔 좀 작지 않을까. 라틴어 선생도 아닌주제에 어원 분석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Calvin’은 대머리거나 작다는 뜻이고, ‘Klein’은 그냥 대놓고 작다는 뜻이니까. 뭐 굳이 알고 싶지 않겠지만, 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산수로 요약하자면,
작음 + 작음 = 존나 작음.
그런데 이게 어떻게 섹시함의 대명사가 된 걸까? 생각해보면 캘빈 클라인은 항상 진심이었다. 광고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속옷 말고는 도대체 중요한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인간의 존재 이유가 오직 허리 밴드의 로고에 집약된 느낌이랄까.
“Nothing comes between me and my Calvins.”
그래, 아무것도 오지 마라. 캘빈과 나 사이에 남루한 현실 따위는 제발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도하는 찰나, 비루한 일상이 눈치도 없이 빤쓰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캘빈 클라인 남성 드로즈 / 1회 착용 / 시착 불가 / 상태 A급 / 직거래 선호.
광역버스 뒷자리에 구겨진 채 ‘당근’을 검색하던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리를 고쳐 앉는다. 세상에. 중고 빤쓰라니.
‘1회 착용’이라는 말은 왜 이토록 많은 서사를 함축하고 있는 걸까.한 번이지만, 분명 단 한 번일 거라 믿고 싶지만, 한번 입고 열흘간 버텼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입었고, 일단 벗었(다고 믿고싶)고, 혹은 상황에 따라 벗을 예정일수도 있다. 다행이 세탁기를 통과했을 수도 있지만, 아직 판매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벗지 않은 상태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번 입었다가 파는거지만 간만보고 안 살거면 당신은 한번도 입어볼수 없다는 이 단호하기 그지없는 팬티는 더 이상 광고 속의 그 팬티가 아니다. 기름칠한 복근도 없고, 몽환적인 조명도 없으며, 초절정 미녀의 눈길을 받는 인생의 하이라이트 따윈 더더욱 없다. 그저 누군가의 장농 서랍 구석에서 밀려난, 작고 얌전하며 조금은 슬픈 직물일 뿐이다. 감상에 젖는 순간, 누군가가 또 슬쩍 끼어든다.
저기... 정품 맞죠?
정품이다. 정품이란 말이다. 팬티로서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고난과 역경을 마친 뒤, 새로운 선택을 앞둔 100% 리얼 진품이다. 정품이지만 남이 입었던 거라 특별히 당신에게 헐값에 넘기겠다는 자본주의적 당당함까지 겸비한 정품이란 말이다. 도대체 이 브랜드가 주는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공장에서 갓 뽑아 올린 탱글탱글한 ‘테무(Temu)’산 새 빤쓰를 대여섯 장은 살 수 있는 돈으로, 굳이 남의 사타구니를 거쳐 간 헌 빤쓰를 기웃거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미지’ 때문 아닐까.
완벽한 육체, 무심한 표정,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입에 풀칠하는 데 지장 없을 것 같은 인생. 그 이미지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도 이걸 입으면, 적어도 빤쓰만큼은 저 새끼랑 동급이야. 물론,
빤쓰만 같다. 몸도 다르고, 얼굴은 말해 뭐해. 연봉도 다르고, 중고 앱에서 천 원을 깎네 마네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사회적 위치도 다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환상은 유통기한이 길다. 어원이 아무리 작아도, 가격이 아무리 곤두박질쳐도, 그 이름의 중력은 여전히 거대하다. 그래서 나는 캘빈 클라인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작다는 뜻의 이름, 인류가 입는 가장 작은 옷, 그리고 그 작은 천 조각에 실린 너무나 거대한 자의식.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은 다들 먼지 낀 창밖을 보며 평범한 면직물 같은 날들을 견디고 있으면서도, 브랜드라는 환상 하나 붙잡고 “그래도 빤쓰는 캘빈이잖아”라며 스스로를 간신히 설득하는 것.
그러니 혹시라도 중고 사이트에서 캘빈 클라인 팬티를 보게 된다면, 굳이 경악하거나 경찰에 신고하거나, 깎아달라고 매달리지도 말자. 그렇다고 덥석 사자는 말은 아니다. 그저 조용히 웃어주자. 그게 어쩌면, 중고 시장에 매물로 나온 캘빈 클라인이 비루한 일상에 보태주는 가장 럭셔리한 위로에 대한 응답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