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말의 온도

그리고 남는 것들에 대하여

by 무너

점심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커피를 뽑고 컵홀더를 찾고 있었다. 그때 간이 식탁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자리는 출입구 바로 옆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바람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그때마다 그는 젓가락을 멈췄다. 아주 잠깐, 멈칫하는 그런 동작이었다.

나는 커피를 받으며 그를 보았다. 그의 등은 살짝 굽어 있었다. 어쩌면 그 굽은 등 위에 누군가 보이지 않는 무게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혼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것.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들키면 조금 다른 일이 된다. 사회라는 이름의 투명한 유리벽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그 유리벽은 말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커피를 들고 나서려는데, 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아는 얼굴이었다. 젊은 여자였다. 아마 같은 회사 사람일 것이다. 남자는 밥을 입에 문 채로 고개를 들었다.

“어어… 식사하지, 식사.”

“아, 흐흐흫… 예예.”

말들은 거의 의미를 이루지 못했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그리고 정적이 왔다. 편의점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그 몇 초 동안 세상은 아주 조용했다. 냄새 없는 바람 같은 것이 그들 사이를 스쳤다. 누구도 그 바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완벽한 문장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이렇게 아무 말이나 던지는 편이 훨씬 나은지도 모른다. 완벽한 문장은 너무 무겁다. 그 무게를 견디다 보면 침묵이 더 길어지고, 어색함은 점점 커진다. 하지만 저런 부서진 말들은 가볍다. 바람처럼 날아가서, 상대의 어깨를 스치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공기가 들어오고, 어색함이 조금씩 빠져나간다.

편의점을 나왔다.

커피는 아직 뜨거웠다. 손바닥에 온기가 전해졌다. 길을 걸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세상에는 그런 ‘아무 말’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말. 논리도, 품격도 필요 없는 말. 그냥 “어어… 식사하지” 같은 것. 그 말은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도 어색해. 너도 어색하지?” 하고 묻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상대가 “예예” 하고 대답하면, 아주 잠깐이지만, 우리는 같은 편이 된다.

혼자 도시락을 먹는 사람도, 갑자기 마주친 사람도.

그 순간만큼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은 평범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어쩌면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아주 살짝 움직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걸었다.

앞으로도 어색한 순간이 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어… 이 컵홀더, 왠지 오늘따라 너무 작아 보이네요. 커피가 도망갈 것 같아서요.”

그러면 상대는 잠깐 멈칫할 테고,

아마도 아주 작게 웃거나, 고개를 살짝 기울이거나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괜찮다. 그저 그 말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작은 틈을 만들면 된다.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들면 된다.

혹은 그냥, 커피 향기만 조금 더 오래 남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