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에 관한 몇가지 학설

퇴근이란 무엇인가

by 무너


퇴근이라는 말에서는 어떤 기대감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해방감이라고 해도 좋다. 아무튼 이 말을 들으면 고역을 치르다 간신히 풀려난 사람의 심정이 어떤지 알 것만 같다. 단지 퇴근이라고 했을 뿐인데 눈이 환해지고 머리가 상쾌해진다.


엔돌핀이던가 도파민이던가. 직장의 정문을 벗어나는 순간 긍정의 호르몬이 팍팍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고 집이 딱히 좋거나, 집에 가면 뭔가 대단한 게 기다리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누울 수 있는 소파가 있고, 마시다 만 소주가 있고, 맨날 잔소리를 하는 아내가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직장보다 더 가혹한 환경이다. 그런데도 나는 퇴근이 좋다.


사실 퇴근이라는 말은 출근이라는 말 못지않게 무척 따분한 단어다. 하루의 중심을 '일'에 두고 그 외의 삶을 주변화하는 뉘앙스 아닌가. 평일이니 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당연한지는 몰라도,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따분하다. 직장은 내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편일 뿐, 나의 중심은 아니지 않나. 나의 중심은... 음... (계속 생각 중. 나중에 다시 논하겠다.)


퇴근이라는 말이 적절한지와 무관하게 그 의미는 명확하다. 근무지로부터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가 퇴근한 상태인가. 단어의 뜻과 달리 그건 또 모호하다. 직장의 정문을 나서는 순간인가. 업무용 컴퓨터의 전원을 끄는 순간인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순간인가. 집에 도착해 넥타이를 확 풀어던지는 순간인가. 수십 년에 걸친 오랜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학계의 합의된 정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몇 가지 주장들이 난무할 뿐이다. 이 글에서는 그 주요 학설들을 엄정하게 검토해보고자 한다.


1. 정문 통과설

퇴근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학설은 '정문 통과설'이다. 정문은 직장의 내외부를 가르는 핵심 지형지물로, 수천 년 인류 문명이 공들여 발명한 구조물 중 하나다. 이 구역을 통과했는가 아닌가에 따라 퇴근 전후를 구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주장으로, 직관적이고 명쾌해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정문 통과설 지지자들은 매년 정문 앞에서 소규모 기념 집회를 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설도 하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문을 벗어났어도 사무실에서 고민하던 업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실질적으로 퇴근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심리적 퇴근설'이 몇몇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2. 심리적 퇴근설

심리적 퇴근설에 따르면 마음속으로 퇴근을 한 이상, 설령 그 장소가 직장이라 하더라도 이미 퇴근 상태로 볼 수 있다. 퇴근 후 술자리 약속에 정신이 팔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그는 몸만 사무실에 있을 뿐 이미 퇴근한 사람이다. 출근길에 억울하게 사고를 당한 공무원의 상해를 공상으로 인정하는 판례도 있지 않나. 심리적 퇴근설 지지자들은 이 판례를 반드시 인용하며, 이 대목에서 항상 목소리가 약간 높아진다.

그러나 이 학설은 현실 앞에서 맥없이 무너진다. 주말에 출근하고 집에서도 업무를 계속하는 상황이라 치자. 그는 틀림없이 심리적으로 퇴근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아무리 "저 아직 근무 중입니다"라고 우겨본들 시간외 수당은 단 한 푼도 나오지 않는다. 심리적 퇴근설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학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위안에 가깝다. 현재 주류 학계에서는 사실상 폐기된 상태이나, 일부 학자들이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가상하다.


3. 사무실문 통과설

'사무실문 통과설'도 있다. 그러나 사무실 문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사장이 복도에서 눈인사를 건넨다면 어떤가. 눈인사는 잠재적 업무 지시의 전조다. 당신은 그 순간에도 퇴근한 사람인가. 화장실에 잠깐 들렀는데 부장님이 카톡으로 "내일 9시 회의 알지?"라고 물어온다면? 사무실 문은 통과했지만 인간 관계망으로부터는 탈출하지 못한 이 상황을, 사무실문 통과설은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적 문제를 외면한 인기영합적 학설로, 현재는 소수설에 불과하다. 이 학설을 개진한 학자는 현재 모 중앙부처 사무관으로 재직 중이라고 전해진다.


4. 시뮬라크르 퇴근설

최근 가장 강력하게 대두되는 학설로 '시뮬라크르 퇴근설'이 있다. 매우 포스트모던한 냄새가 나는 이 학설의 요지는 이렇다. 당신이 퇴근을 했다고 느끼는 것은 당신의 착각일 뿐이다.

출근과 퇴근이라는 형식을 도입한 것은, 그 행위의 사실성에 기대어 왜곡된 환상을 주입하기 위해서다. 직장이 특정한 장소에 있다는 착각은 사실 이 세상 전체가 직장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가상현실의 전략이다. 디즈니랜드라는 공간이 특정한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온 세상의 유치함을 은폐하기 위해서인 것과 같은 논리다. 이 학설은 보드리야르를 인용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고, 보드리야르를 인용하면 대화가 끝난다는 단점이 있다.


지금까지 주요 학설들을 검토했다. 결론을 내리자면, 진정한 퇴근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직 퇴근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