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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는 고맙기만 한 것인가요?

영화 <로봇, 소리>(이호재 감독, 2016) 후기

by 무너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남자가 있었어요. 청각장애인이냐고요? 그렇지는 않고요, 그냥 그는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남자에요. 상남자라고 할까요. 아니면 꼰대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거나 그는 가장 보수적인 대구 남자고 딸을 하나 가진 평범한 아빠랍니다. 그런데 그가 딸을 잃어버렸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 실종된 딸을 찾아 십년의 세월을 폐인처럼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을 헤맸죠. 이 남자는 딸 유주(채수빈)가 지하철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어디엔가 딸이 살아 있을거라고 남자는 오늘도 길을 나서지요. 그러던 그에게 소리를 알아듣는 이상한 로봇이 나타났습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이 로봇은 원래 미국의 첩보위성이었죠. 남자는 자신의 음성만으로 모든 정보를 알아내는 이 신통방통한 로봇과 딸을 찾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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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봇, 소리>는 가족 간의 갈등과 이별과 같은 전형적인 휴먼 가족드라마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약간은 그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죠. 미국의 전략무기인 첩보위성의 추락이라던가 국익을 둘러싸고 고급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미국과 경쟁을 하는 국정원 같은 다소 허황된 이야기가 덧입혀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가족이라는 중심축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설정이 어찌되었든 이 영화는 아빠가 딸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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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딸과 소통하지 못하는 남자였습니다. 같은 피를 나눈 가족 안에서도 ‘소리’(목소리)만으로는 마음을 주고받기 부족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꽉 막혀 있던 아빠는 아이러니하게도 온기가 흐르지 않는 쇳덩어리 로봇을 만나 서서히 변화합니다. 딸과도 소통하지 못하던 아빠가 ‘소리’(로봇의 이름)에서 온기를 느끼게 된 것이지요. 결국 소리의 도움으로 딸의 죽음을 받아들인 아빠는 로봇에게 강한 부성애를 느낍니다. 딸이 가고 싶던 길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로 막고 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지요. 로봇 ‘소리’는 아빠의 도움으로 아프카니스탄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한 소녀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보호해 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남긴 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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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에서 한국적인 가족관계를 비판하는 감독의 시선을 느꼈습니다. 가족은 울타리이기도 하고 휴식처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기도 하잖아요. 로봇이 아빠에게 “보호는 고마운 것이냐”고 묻는 건 자신의 욕망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강요하는 우리 부모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을까요? 주말에만 만나는 무느와르의 영화산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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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평점 : 재미 별 7.5개, 감동 6.5개, 작품성 7개
주목할 점 :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이성민의 연기력, 응답하라 1988에서 스타로 우뚝 선 류준열의 깜짝 등장,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 이하늬의 영어실력, 금방이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빠!(아니구나 아빠!구나 ㅠ)를 외칠 것 같은 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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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소리」 (이호재 감독, 2016)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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