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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r 03. 2016

선택과 배제의 기술

<영화 '스포트라이트'(토마스 매카시, 2015)> 후기

무대는 독특한 곳이다. 시공간이 축약되고 시선이 집중된다. 음악과 노래, 연기와 춤, 분장, 의상, 무대미술, 조명과 같이 인간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모든 예술 양식들이 잘 차려진 한정식처럼 한상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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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자칫 산만할 수 있는 관객의 시선을 간단히 모아주는 건 역시 조명이다. 평면적인 무대위에서 스포트라이트는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잡아내는 매우 요긴한 장치로 쓰인다. 배우가 아무리 멋진 표정과 몸짓으로 자신의 역할을 표현해 낸다고 해도 자신만을 향해 집중적으로 날아드는 조명이 없다면 관객에게 자신의 감정을 어필 할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스포트라이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하나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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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이라는 고도로 계산된 흐름 안에서야 기계적 조작에 한정된다 하더라도 실제 우리 사회에서 스포트 라이트 기능이 있다면 어떤 의도에 따라 선택할 것과 배제할 것을 나눌 수 있을까.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우리 사회에서 조명의 역할을 맡고 있는 언론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언론을 스포트라이트에 비유하는 것은 그 역시 스스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선택하거나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보스턴 글로브지의 기획취재팀 이름이 '스포트라이트'인건 매우 훌륭한 네이밍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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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수십년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감추어져 있던, 아니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카톨릭 교회의 추문을 하나씩 들추어 내는 열성적인 기자들과 그들의 험난한 취재과정을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교회의 권위를 위해, 기득권에 기댄 작은 이익을 위해 애써 진실을 덮으려 한다. 지역사회라는 행복한 무대의 존속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화려한 조명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물론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동, 장애인, 빈곤계층과 같은 약자들은 빛이 없는 무대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다. 이 때, 우리가 현란한 조명으로 무대 중앙에 동참하는 것은 무대의 구석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의도된 선택이 정의롭지 않을 때 그것은 소극적 의미의 방관이 아니라 적극적 의미의 배제가 아닐까. 다행이 영화 속 글로브지 기자들은 선택과 집중의 의미를 알고 기꺼이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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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을 그리면서도 극적인 서사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이 과연 어떤 것에 어떤 방식으로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개인의 비리를 들추는 것 보다는 시스템 전체와 사회 구조적 문제에 집중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령 경쟁사에 특종을 빼앗기더라도 그것이 진실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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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우리 언론의 현실과 비교하며 분개하다가 문제는 언론 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전의 작은 효과만 바라보고 급조한 기획안, 진실보다는 편의를 찾는 사람들, 보잘 것 없는 작은 권리와 이익들, 작은 것에만 분개하는 이기심, 보다 근본적 정의를 외면해 온 타성이 지금의 우리 사회를 만든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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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언론사 뿐 아니라 그 어떤 조직에서도 본받을 만한 모범적인 성과 프로세스를 보여준다. 권한 안에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상사와 부하들의 실무를 기꺼이 나누어 맡는 중간 관리자, 자신의 소신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밀어붙이는 열성적인 동료들이 조직의 성과달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영화는 잘 그려내고 있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사, 윗사람만 쳐다보는 중간관리자, 소신따윈 몇가지 얄팍한 이익과 맞바꿔치기한지 오래된 실무자들을(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지만) 꽤 많이 봐온 입장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영화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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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토마스 매카시, 2015)>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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