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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r 06. 2016

그들은 정말 탈출한걸까.

<영화 '룸'(레니 에이브러햄슨, 2015)> 후기

스포일러 주의

우리는 누구나 감금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언어로 재구성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 감금은 원초적 경험으로 내면화 되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백 번 이상 감금당하고 또 다시 탈출한다. 자궁에서 시작된 감금이 무덤에서야 비로소 끝을 맺게 되니 결국 우리는 영원히 탈출하지 못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아니, 누군가는 무덤 속에 들어가는 것을 ‘승천’(탈출)이라 부르기도 하니 어쩌면 인생이라는 게 이 감금과 탈출의 무한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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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룸>은 끔찍한 범죄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조이는 17세에 납치되어 7년을 헛간 같은 방 안에 감금되었다. 그 안에서 잭을 낳았다. 잭은 납치범의 2세지만 조이에게는 생존해야 할 유일한 이유이자 희망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건 양면을 가지고 있다. 헛간의 벽이 잭의 「룸」과 세상을 갈라놓았지만 그 벽으로 난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처럼, 혹은 우리가 탯줄에 붙잡혀 (탈출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았던 것처럼. 감금과 탈출의 순환 구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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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잭(아이)의 시선을 따라간다. 잭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래서 둘의 탈출이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면, 범죄스릴러물이 되었을지도 모를 이 놀라운 이야기가 잭의 시선을 따라가며 상징적 동화가 되어버린다. 잭에게 세상은 경험해보지 못한 허구다. 실체가 없으므로 세상은 티비 속 화려한 이미지들과 다르지 않다. 잭에게 의미 있는 실체는 매일 아침인사를 나누는 작은 방 안의 몇 가지 무생물들이 전부다. 말하자면 잭은 자궁 밖으로 나왔을 뿐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존재인 셈이다. 그런 잭에게 탈출의 기회가 찾아온다. 누구나 자신만의 작은 세상을 완전히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인데 잭의 탈출은 그러지 못했다. 갑작스러웠고, 자의에 의한 것도 아니었으며,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관객들의 말에 의하면, 탈출은 성공적이었고 잭과 조이는 급격히 공간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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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일상의 공간이라고 부르는 세상. 잭과 조이가 5년을 하루같이 천장으로 난 작은 창밖으로 보며 그리던 그 세상은 과연 자유로운 곳일까. 조이의 기억 속 단란한 가정은 해체 된지 오래고 사람들은 잭과 조이를 자신들의 편견 안에 가두려고 한다. 견디지 못한 조이는 감금된 상태에서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자살을 시도함으로서 이 세상 역시 견디기 어려운 감금 상태의 연장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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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이에게 세상은 돌아갈 수 있는 실체적 공간이었지만 잭에게는 그저 판타지였을 것이다. 조이에게 세상은 그리운 과거였고, 잭에게는 불안한 미래였을 것이다. 조이는 자발적으로 두 번의 탈출을 시도했고 두 번 다 실패했지만, 잭은 타의에 의해 두 번의 탈출을 시도했고 두 번 다 성공했다. 그러니 얼떨결에 두번의 공간이동을 한 잭이 그 작고 끔찍한 '룸'을 그리워하는 건 조이가 감금되기 전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과 달리 볼수 없다. 아프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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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원히 혹은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은 존재하는가. 잭은 자신의 인생에서 또 언제 (자발적 의사에 따른) 탈출을 감행할까. 이 두 사람에게 「룸」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범죄 실화라는 걸 빼고 생각해보자. 어차피 이 영화는 실화를 차용한 상징이다. 세상은 어떤 공간일까. 우리 역시 당장 어딘가로 탈출해야 할 사람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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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룸'(레니 에이브러햄슨, 2015)>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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