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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r 16. 2016

'내새끼즘'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영화 '4등'(정지우, 2016) 후기>

'프로듀스101' 의 무대를 광역버스 방송에서 처음 보았다. 연에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국내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 101명의 연습생들 가운데 무려 '국민투표'를 통해 정규멤버를 선발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명이라고 한다. 선발된 소수는 화려한 미래가 보장된 걸그룹이 될테고 인간승리 성공드라마로 포장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대위 소녀들은 하나같이 간절하다. 똑같은 복장과 똑같은 표정을 한 10대 여자아이들 101명으로 꽉찬 방송 무대를 생각해보라. 그 자체가 기괴함의 극치인데 거기에 자신을 뽑아달라고 "PICK ME UP!"을 외치며 군무를 춘다. 소세지 분쇄육이 되기 위해 일렬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가는 핑크플로이드의 뮤직비디오 속 아이들 생각이 나면서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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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등>에서 초등학생 준호가 처한 현실도 101명의 아이돌 지망생들과 다르지 않다. 준호는 재능있는 수영선수지만 언제나 4등을 면치 못한다. 4등은 "아쉬운" 성적임에 틀림없지만 "뽑히지" 않은 탈락자라는 점에서 101등과 다를것이 없다. 세계 2등이라고 해도 은메달에 "머물렀다"느니, "통한의" 은메달이니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 나라에서 4등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위축은 꼴찌의 그것과 또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만년 4등 준호에게는 한가지 걱정거리가 더 있다. 준호의 뒤에서 한결같은 목소리로 "1등"을 외치는 엄마라는 존재다. 엄마는 준호에게 '힘'이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녀는 늘 가족들을 위해 교회와 사찰을 오가며 간절히 기도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할 여유가 없는(이라고 쓰고 '자신의 희망이 무언지 모르는'이라고 읽는다.) 희생의 아이콘이자 전형적인 한국형 엄마다. 이런 엄마에게 가장 무서운 건 아들이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것보다 4등 이하로 밀려나는 것이다.

메달권 밖으로 밀려나면 "사람구실도 못하는" 잉여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가 사랑하는 아들을 폭력이 난무하는 경쟁 레인 안으로 밀어넣는 이유다. 그렇게 엄마의 욕망을 대리충족 시켜주기 위해 레인 안으로 밀려들어온 아이들은 쫒기듯 결승지점을 향해 역영한다.

세상이 빛으로 가득한 건 공간 속에 방사된 빛의 입자들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졌기 때문이고 세상이 다양한 색으로 보이는 건 그 빛을 반사하고 흡수하는 비율이 사물들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 아닌가. 영화 <4등>은 서로 다른 취향과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정해진 룰에 따라 다듬고 긁어낸 뒤 서열을 매기는 것이 어떻게 교육이 될수 있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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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폭력'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어떻게 폭력에 길들여지는가'다. 영화 속에서 폭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니가 똑바로 하지 않아서' 때린다는 코치나 '어떻게든 메달만 따게 해달라'며 폭력을 묵인하는 엄마는 방법만 달랐을 뿐 같은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자식의 폭력에 단호하지만 타인의 피해에는 둔감했던 아버지 역시 방조한 책임이 있는 공범자다.

이들은 폭력에 익숙해지며 성장했던 세대답게 폭력을 사랑으로 가장하고 합리화하는 방법마저 자연스럽다. 매질 뒤에 슬쩍 상처를 보듬는 그 무신경하면서도 끈끈한 손길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흘린 눈물은 감동이었을까 억울함이었을까. 어쩌면 우리 기성세대에게 폭력은 후세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세대의 그 고결한 '사랑의 매'를 통해 우리는 사랑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그냥 '매'에 익숙해진 것 아닐까.

생각할게 많은 영화다. 4월 개봉한다고 하니 적잖이기대가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영화만드는데 힘을 모아준 사람들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고 여기 쓰지 않은 소소한 재미도 있다. 객석에서 공감의 웃음소리가 많이 들렸다.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낸 수영장면도 인상적이다. 길게쓰면 맨 뒤만 읽는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결론은 마지막에 쓴다. 꼭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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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등'(정지우, 2016)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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