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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r 31. 2016

당신이 원하는 건 여행인가 도망인가

10cm의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듣고

버스킹으로 출발해 대표적인 인디밴드로 성장한 10CM의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런 만큼 오래 즐길 것 같다. 같은 앨범의 ‘쓰담쓰담’이나 “3집에 대한 부담감‘ 등의 노래도 대만족이다. 적당히 야한 가사도 좋고, 권정열의 목소리는 같은 남성에게도 매력적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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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청춘이다.’라는 노래 제목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대놓고 패러디한 것이다. 노골적인 조롱 같기도 하고 악의 없는 장난 같기도 하다. ‘희망 없는 5포세대의 현실을 왜곡한 꼰대의 자뻑 설교집’이라는 식의 악평을 받은 책이지만 또 한편으로 그만큼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힘을 얻은 청춘들이 꽤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10CM의 노래가 김난도의 책보다 좌절모드로 살아가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훨씬 더 큰 위로가 되었을 거라는데 오백 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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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화자는 “국제선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한” 조금 불쌍한 청춘이다. 그는 ‘코타키나발루’와 같이 다소 생소한 지명까지 알고 있지만 “여권이 없고 비자가 없고 돈이 없어” 여행을 갈 형편이 안 되는 청년이다. 사정은 이렇게 퍽퍽한데 불행하게도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에서는 해외여행의 이미지가 넘쳐난다. 돈만 있다면 젊음이나 열정, 꿈, 패기 다 없어도 그 이국적인 풍경을 소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범람하는 이미지는 오히려 청년들의 소외를 심화시킨다.노랫속 청년은 ‘여행 가고 싶다’로 시작해 어느 새 ‘도망 치고 싶다’로 슬쩍 속내를 드러낸다. 사실 그에게 여행은 현실도피의 방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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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여행 한번 떠나지 못하는 소외된 청년들의 고달픈 삶을 흥겨운 리듬과 톡톡 튀는 가사로 보듬는다. 아프리카든 산토리니든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이 훌쩍 도망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아파도 참고 견디며 이겨내는 자만이 그나마 먹고 살수 있다는 현실론에 순응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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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하면 된다.’는 구호를 신주처럼 모시고 살아 왔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이 어느 순간 ‘라면 된다’로 희화화되었던 것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세대 역시 해도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아무리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청춘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벌써 눈치 챈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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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여권조차 없는 청년은 생각한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리카 청춘이다. 청춘은 갈가리 찢겨진 야성의 대륙이다. 반듯하게 재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멋대로 난도질 당한 검은 몸뚱아리다. 도망치고 싶지만 오늘도 순응하며 견뎌야 하는 아픈 운명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요즘 애들 말로 ‘핵노답’인거다.

------------절취선 아래 가사 -----------------

아프리카 나도 가고 싶으니까
코타키나발루 좋겠다
산토리니 근데 나는 뭐하고 있니
아마존의 눈물 슬프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어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어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고 싶어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어

자메이카 진짜 가고 싶다니까
우즈베키스탄 예쁘다
사우디 아라비아 거긴 기름값 얼마야
브라질의 삼바 신난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어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어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고 싶어
언제든 어디든 떠날 수 있어

가방 샀고 모자 샀고
자외선 차단크림도 사고
캐리어 있고 카메라 있고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다고
젊음도 있고 열정도 있고
꿈도 패기도 다 있다지만
여권이 없고 비자가 없고 돈 없다고
두 다리 두 팔이 멀쩡하면 뭐하나
청춘이 뜨거워 타오르면 뭐하나
국제선 비행기 한번 타보지도 못하고
눈물이 흐르네

아프리카 나도 가고 싶다니까
알래스카 연어 맛 좋다
산토리니 근데 나는 뭐하고 있니
사하라의 폭풍 뜨겁다

아프리카 나도 가고 싶다니까
진짜 가고 싶다니까
나도 보내 달라니까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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