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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21. 2016

구구한 삶에 관하여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해가 중천에 떠오를때까지 게으름을 피워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낮은 바닥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면 또 이렇게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막막합니다. 그래도 막상 하루 하루는 또 버틸만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피해 멀찌감치 돌아가지만 가끔 먹을 것을 챙겨줄 때도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멸시를 받으면서도 사람이 많은 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가끔 식당가 인근의 쓰레기통을 뒤질때도 있습니다. 운이 좋을 땐 제법 근사한 음식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데서나 먹고 또 뒹굴기 때문에 얼핏 혐오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온순한 편입니다. 저와 비슷한 무리들이 이 근처에 수도 없이 많이 깔려있지만 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위해를 끼칠 마음도 없거니와 그럴 기력도 없습니다. 저는, 아니 우리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정말입니다. 그저 한나절을 살아낼 약간의 음식과 누울 곳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어려운 일이야 다 말할수 있을까요. 발로 채일 때도 있고 쫒겨 다닐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맨몸뚱이 하나로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겨울은 참 견디기 힘든 계절입니다. 너그러운 시장님은 우리를 위해 몇 군데 잠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지만 그 곳에서 오래 지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한때는 그 너그러운 시장님도 무리지어 있는 우리를 곱게 보지 않았더랬습니다. 그저 우리끼리 체온을 나누며 추위를 견디는 방법이었는데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수 있다고 걱정하셨다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쫒겨나면 흩어지는 척 했다가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갈 곳은 없지만 동네 한바퀴 돌아 다시 광장으로 오는 길에 좋은 음식이나 괜찮은 잠자리를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내는거지요. 쫒아낼 수는 있지만 산 목숨을 끊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살아야지요. 구구,한 목숨이지만 죽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볼 생각입니다. 저는 비둘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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