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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24. 2016

해어화, 꼭 신파여야만 했을까

아쉬운 점이 많은 수작<영화 '해어화'(박흥식, 2016) 후기>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기생은 그저 사람의 말을 좀 알아듣는 ‘꽃’일 뿐이다. 내 말이 아니라 영화제목 이야기다. 꽃은 제대로 한 번 꺾이기 위해 피어난다. 누군가에게 꺾이기 위해 권번 안에서 길러진 여성들이 ‘예인’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소수 권력자에게 성을 팔던 일제 강점기가 영화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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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대형 기획사 안에는 철저하게 미디어용으로 훈련된 여자 아이들이 ‘연습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PICK ME UP'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연습생들을 그때의 권번 기생들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꺾이거나 뽑히기 위해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부차적 존재라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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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돌을 떠올린 건, 영화의 초반부에 소율(복사꽃)과 연희(가시꽃)이 기생으로 훈육되는 과정이나 그녀들이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 가수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이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상이 너무 강렬해서일지 몰라도 흰 린넨 셔츠를 입고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윤우(유연석 분)은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그 시대의 민족주의 지식인 같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반 소리반 어쩌구 해가면서 돈이 될 만한 상품을 고르는 기획사 사장 같았다고 하면 조금 심한 평가일까. (정말 웃겨서 하는 말인데 소율과 연희가 즉흥 듀엣을 하는 장면에서는 복사꽃과 가시꽃을 캐릭터로 "꽃자매"라도 탄생하는거 아닌가 긴장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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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를 통해 비운의 민족주의 천재 작곡가를 그리고 싶었는지 몰라도 고통 받는 민중들을 위해 ‘조선의 마음’을 작곡한 사람이 상류층들이나 드나들 것 같은 펍에서 당시 미국에서도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스윙재즈풍의 노래를 작곡하고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 무대를 연출하는 건 코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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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영화는 부차적 존재인 당시대의 여성들이 어떻게 권력에 이용당하고 이용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암투와 배신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여성의 운명을 합리화하려면 별수 있겠는가. 소율은 청순가련해야 하고 모든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만큼 예뻐야 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든 현실에서든 여성이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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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어화’(말을 알아듣는 꽃)의 의미를 알려주는 초반부터 한숨이 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순정과 결국 버림받고 망가진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주인공의 가련하고 기구한 운명 따위가 영화의 바닥에 깔린 정서다. 거기에 민족주의 감성을 적당히 버무리고 다이아몬드를 제시하는 김중배를 끼워넣고 질투에 가득 찬 살리엘리 캐릭터를 주인공에게 입힌 뒤 삼각관계 치정극으로 마무리 하면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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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거창한 세트와 화려한 소품들이 오히려 현대적으로 보일 만큼 영화의 내러티브가 신파라 하는 말이다. 차라리 소율이 남자에게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소중한 동무이자 라이벌이였던 연희의 재능을 질투해서 음모를 꾸민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들의 우정과 질투 사이에서 생기는 심리적 갈등을 보다 세밀하게 표현했다면 조금 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 극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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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미에 다시 등장한 기생 옥향이 말대로 가수는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되듯 이 영화도 무언가 한 가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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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니까 음악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ost자체로 들으면 참 괜찮다. '사랑 거짓말이'나 '조선의 마음'은 어느 뮤지컬 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 같았다. 그런데 그걸 일제강점기인 40년대 음악이라고 우기면 안되지. 노이즈 같은거라도 좀 자연스럽게 입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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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효주를 할머니 분장해서 내보낸 건 최대의 실수 같았다. 후덕한 아주머니가 되어 나타난 옥향이와의 재회씬은 정말 어색해서 오그라들뻔 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감정마저 바닥으로 내팽개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한효주를 할매 분장을 시킬 생각을 했을까. 그 뒷부분만 다시 찍자. 정말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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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래도 뭐 이만하면 꽤 괜찮은 영화다. 내가 애정이 있어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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