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시청기
등을 밀지 않고서는 목욕을 했다 말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혼자 목욕을 가더라도 반드시 등은 밀고 와야 했다. 거북이는 아니었지만, 등 언저리 한가득 넘쳐나던 때가 무척이나 거북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때수건이라는 이름의, 근본이 의심스러운 작고 거친 천 조각으로 피부를 벗겨지기 직전까지 문질렀고 그렇게 온몸의 때를 벗겨내고 나서야 비로소 목욕탕 문을 나왔다. 죄가 넘쳐나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자신의 결벽을 증명해야했다. 그러다보니 손이 닿지 않아 항상 꺼림칙한 등 부위는 늘 고민꺼리였다. 허어 이거 참.
손이 닿질 않네.
누구에게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듬직한 친구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했던 어떤 대통령도 알고 보면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친구야. 내가 널 팍팍 밀어 줄 테니 나중에 내 뒤 좀 봐줘. 뭐 그러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등에 붙은 묵은 때도 뭐 그런 것들 중에 하나였던 거다.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본 사람일지라도 서로의 등을 밀어주자는 다소 민망한 거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안할 수 있었고 거의 대부분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그러니까 사우나도 불가마도 아닌 조그만 동네 목욕탕에서 흔히 일어났던 일들이고 때는 더도 덜도 말고 딱 1988년쯤의 이야기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상상해보라. 초면의 벌거벗은 사람들끼리 수행을 하듯 서로의 묵은 때를 벗겨주는 장면을. 송글송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때를 벗겨주고 나서 비로소 자신의 노동만큼의 대가를 돌려받는 상호주의의 방식을. 계나 두레, 품앗이 같은 아름다운 농경사회의 미풍양속이 공동체의 밑바닥 정서에 남아있던 시대라 가능했던 풍경이었을까.
'때 품앗이'가 가능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가득하다. 우리가 겪어온, 그러나 잊고 있던 공동체의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한 골목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육아와 살림, 가정의 대소사를 거의 함께 헤쳐 온 그 아이의 부모들은 마치 서로의 내밀한 부위를 공유하고 어루만져 온 사람들처럼 허물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분리된 주거공간을 가볍게 넘나들며 음식과 갖가지 생활소품과 이야기를 공유한다. 친정엄마의 기습적인 방문을 핑계로 정환이 엄마의 화장품이며 연탄을 자기 집에 가져다놓는 선우엄마의 행위를 요즘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명백히 절도죄를 구성하지 않을까. 그러나 전복죽 한 그릇이라도 기꺼이 나눠먹는 이들 다섯 가족에게 이 정도는 흉허물이 될 수 없는 일상이다.
이 가족들이 막 서울로 몰려들었던 70년대, “형님먼저 아우먼저”라는 카피로 삼양라면의 아성에 도전하던 기업의 이름이 ‘농심’이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그러니까 88년은 ‘농심’을 안고 상경하여 쌍문동 같은 변두리에 자리 잡고 살아온 가족들이 자신들이 공동체 안에서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면서 다소간의 풍요를 공유하던 마지막 시기 쯤 되지 않을까. 6수생이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웃의 천재 바둑소년의 성공스토리나 반지하방 보라의 서울대 합격 스토리를 자신의 자랑꺼리로 말할 수 있었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보다는 '우리'였으니까.
88올림픽이라는 초국가적 이벤트가 벌어지던 그 해는 어쩌면 우리들에겐 분기점 같은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개인'보다는 ‘가족’이 ‘가족’보다는 ‘동네’가, 지역이, 국가가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였던 시절, 그 전체주의 사회 안에서 개인은 서서히 싹을 틔어갔다. 삼성이 워크맨을 본떠 만들어낸 ‘마이마이’는 대중음악을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옮겨놓는 계기가 된다. 따지고 보면, 그 이후의 문명은 사물의 개인화로 재구성되지 않았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는 Personal해졌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호주머니에 통신기기(Beeper)를 휴대하게 되었으며 그림엽서나 유선전화로 연결되던 사람들이 PC통신으로 ‘접속’하기 시작했다. ‘아아 대한민국, 아아 우리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로 끝을 맺는 “아, 대한민국”같은 건전가요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난 멈출 수 없어”(잼), “난 알아요”(서태지)와 같이 “나”를 내세운 노래들이 대히트를 하게 된 시기도 따지고 보면 그 무렵, 공동체의 풍경들이 서서히 빛을 바라던 때 아닌가.
1988에서 2015까지. 난 그 변화의 시대를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살아보니 국가도 가족도 중요하지만 ‘나’하나 건사하는 게 쉽지 않은 세월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응쌍팔”을 보면서 혼자 목욕을 갔다가 등을 밀어달라는 낯선 아저씨의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인 기분이 들었다. 잊고 있던 그 시대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온, 그래서 조금은 불편하고, 또 조금은 그립기도 한, 그런 기분으로 응쌍팔을 보고있다. 아마 당신들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