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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01. 2016

이불킥하고 싶은 기억의 재구성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후기>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과 내뱉은 말을 복기하는 습성이 있다. 하루 이틀이라도 지나간 장면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가 가득한 회상이다. 예민하거나 소심하거나, 잡념이 많은 나 역시 그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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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회를 한다고 그때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지금의 판단으로 그때를 재구성 해보는 것도 쓸모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지나고 난 후에 ‘이랬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가 밀려들지만 사실 우리가 ‘그때’라고 부르는 그 지나간 시간조차 당시에는 ‘지금’이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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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열 일곱 번째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한 사내의 한 나절 로맨스를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가며 재구성한다. 전 편과 후 편은 같지만 다른 이야기의 반복이다. 설정이 같고, 등장인물이 같고, 대사도 미묘하게 비슷하지만 결론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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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둘 중 한 편은 주인공의 하루를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이고 다른 한편은 이미 벌어진 그때를 후회하며 지금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상상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즉흥적이지만 예민하기 짝이 없는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의 성격으로 볼 때 후편이 객관적 서술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함춘수의 독백이 많은 전 편은 ‘지금’의 시점에서 자신의 쪽팔린 모습을 적당히 빼고 재구성한 그때겠지. 아, 시바 이랬어야 했는데... 정도의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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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편에서 여류시인과 카페주인 앞에서 바지를 벗어 던지는 객기를 부리는 장면이나 스시집에서 찌질하게 울먹이며 주워 온 반지로 사랑고백을 하는 장면은 함춘수에게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그래서 함춘수는 윤희정(김민희 분)과의 달콤한 로맨스를 전편과 같이 절제된 엔딩으로 재구성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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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은 영화다. 정재영은 즉흥적이고 찌질하면서도 지식인의 풍모 만큼은 지켜내고 싶어 하는 40대 중년의 예술가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김민희와의 스시집 씬은 역대 영화의 음주장면 중에서 가장 리얼하다. 모델의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는 김민희도 귀엽고 엉뚱한 여주인공 역할을 잘 소화해낸다. 김민희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롱테이크에 줌인과 줌 아웃만으로 연기자의 감정 표현을 리얼하게 담아내는 연출력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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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고 달콤하지만 한편으로는 묵직한 여운도 있다. 어디 선술집이라도 들러 낯선 여인네에게 소주한잔 하자고 수작이라도 부릴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기존 홍상수 영화에 반감을 갖고 있는 관객들도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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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근데이게왜청불? #김민희키스신이뻐 #눈내리는장면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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