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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19. 2016

그라운드 밖으로 걸어들어가다

새벽에 축구경기를 구경하던 때가 있었다. 탄탄한 허벅지의 사내들이 브라운관의 이쪽 끝에서 반대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곤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실눈을 뜨고 티브이 불빛을 바라보다가 심판이 휘슬을 불기 전에 다시 잠들곤 했다. 꿈 속에서도 경기는 계속 되었다. 선수들은 악착같이 그라운드를 내달렸지만 다행이 티비 밖으로 뛰쳐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그들 틈에 끼어 열심히 뛰어 다녔지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작은 네모 모양의 금 안에서 동그란 공을 열심히 쫒아다닐 뿐 세상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숨이 차올라 곧 구토가 날 것 같았다. 지켜보던 아내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럴거면 잠이나 자는건데. 선수들이 티비 밖으로 뛰쳐 나오길 기다린걸까. 그녀는 모로누워 씩씩거렸다. 커튼위로 붉은 빛과 푸른 빛이 번갈아 쏟아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마시던 잔에 거품 꺼진 맥주가 얇은 파장을 겹겹이 그렸다. 골이 들어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파동을 그리던 잔 속의 맥주도 이내 잠잠해질 것이다. 아내도 잠에서 막 깨어난 듯 실눈을 뜨고 물어본다. 들어갔어? 나 역시 실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그녀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멀리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함성이 들려오고 나는 티비를 끈 후 천천히 그라운드 밖으로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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