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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17. 2016

한강의 기적과 하청업자라는 그늘에 대해

한강의 수상은 틀림없이 기쁜 일이다. 그런데 그의 수상을 보도하면서 맨부커상을 '거머쥐었'느니 다른 유력 후보군들을 '따돌렸다'느니 하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것은 세계최초, 동양최대, 두유노 강남스타일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아 무척 안쓰럽다. 꼭 그렇게 스포츠 중계하듯 할 필요가 있나.

이런 언론의 호들갑에 시장부터 반응 할 것이다. 앞으로 한강 작가의 작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겠지. 수상작이 아닌 이전 작품들까지 아마 동이 날거다.  수학능력시험 지문으로 출제될지도 모른다. 영화나 음악, 대중예술 분야에서 보여준 그간의 호들갑을 떠올려 보면 틀림없다. 우리 스스로의 평가보다 서구의 평가를 더 높은 것으로 취급하는 문화적 토양위에서 해외수상이라는 실적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일류군과 그렇지 못한 이류군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왔다.

영화판이 대표적이다. 시장을 독점한 기업들이 수상을 한 스타감독들의 작품과 대중적 흡입력이 다소 떨어지는 독립영화작품에 내어주는 스크린 수를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문학판은 영화판과 좀 다를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쁜 소식을 들으면서도 이렇게 삐딱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건 호들갑 속에서도 생존의 문제까지 고민해가며 묵묵히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는 신진 예술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변한 국내 수상의 이력마저 없어 일류와 이류의 이분법에서도 소외된 계층이다. 예술가로 살기위해서는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생존부터 걱정해야 하는 환경에서 어느누가 이 가시밭길을 선택하겠는가.  

한 이름없는 화가가 유명 대중예술가의 하청을 받아 대신 작품을 그려주고 푼돈을 받아왔다는 의혹은 한강의 수상 소식이 들려온 오늘, 우리 예술계의 또 다른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무명의 화가 역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슬며시 유혹과 손잡으면서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누구하나 주목하지 않아도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는 수 많은 무명의 그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수는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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