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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29. 2016

내 몸 관리 매뉴얼,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


먼저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을 이완시켜. 갑작스럽게 큰 근육을 움직이는 건 위험해.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에 손목과 발목부터 시작하는 거야. 고개를 돌려주고 어깨와 허리를 움직여주는 식이지. 그리고 생수 한잔, 가볍게 사과나 토마토 녹즙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결에 따라 원을 그리듯 세안을 한 후 보습제를 충분히 발라. 피부가 건조해지면 주름이 늘어나니까. 외출시에는 선크림 필수, 혹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도 마찬가지. 출근시간을 이용해서 최대한 걸어봐. 업무중에는 한 두 시간 마다 일어서서 스트레칭을 해주고 비타민과 오메가3 같은 필수 약품을 챙겨먹고, 적어도 이삼일에 한번은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운동을 해야지. 양파는 혈액순환에 마늘은 원기보충에, 홍삼이나 아사이베리 같은 건강식품도 좋다더라구. 술? 술은 가급적 피하되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물을 많이 마셔. 야채를 미리 먹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담배? 안피우는 게 상책, 커피도 프림이나 설탕 없이 마시는 게 좋고 그것도 치아착색의 원인이 되니까 마시면 바로 양치를 해야 해. 하루 세잔을 넘지 않는 걸로. 녹차도 마찬가지. 양치는 식사 후에 반드시, 혀와 입 천정 안쪽 어금니 뒷부분까지 꼼꼼하게. 스켈링은 일 년에 두번, 그리고 스트레스 받지 말란 말야. 가슴이 답답할 때는 병원에 가봐. 위나 장 내시경도 정기적으로 받아야하고 이제 마흔 넘었으니 건강검진 꼭 받아라. 머리카락이 빠져 고민이라구? 청포물은 구할 수 없어 못하겠지만 하다못해 식초 한두방울 떨어뜨려 머리 행굴 수는 있잖아.
- 내 몸 관리 매뉴얼 -

다섯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지, 대개 한 삼십분 꾸물거리다 보면 여섯시가 되거든, 그러면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대충 스킨로션을 바른 후 냉장고를 열어봐, 물론 아내는 밥을 먹고 가라고 하지만 그럴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잠을 오 분 더 자겠어. 두유나 요거트 따위의 간식을 챙겨서 가방에 찔러넣고 통근버스를 타는 시각은 여섯시 삼십분, 이제 한시간 동안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거야. 버스 안에서는 잠을 자거나 책을 읽어, 물론 페북도 거기에서 하지. 페북을 하다보면 잠에서 슬슬 깨어나거든. 책을 읽으면 달아났던 잠도 다시 찾아올 때가 있으니까.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뭐라도 끼니를 챙겨야지 싶어 구내식당을 가거나 직장 앞 파리제과점을 기웃거려. 물론 먹을 건 딱히 없어. 대개가 아메리카노 한잔과 베이글 따위를 집어들고 나오는 게 대부분. 일과를 시작하며 다짐하지. 오늘은 담배 안피워야지. 그러나 그게 되나. 공복을 보충하려는 듯 허겁지겁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꼭 식후연초를 하게 돼,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 아직도 안끊으셨냐는 옆자리 동료의 비웃음을 미소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빨아. 담배 그렇게 피는 거 무지 맛있다. 오후는 조금 졸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럴 틈이 안나. 눈이 아파와.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폈다가 별짓을 다해보지만 어깨는 왜 이리도 쑤시는 건지. 아차, 비타민을 먹어야겠구나 싶어서 물을 받으러 갔다가 왠지 커피가 땡겨.. 결국 커피에 비타민을 섭취하지. 소화가 되려나 몰라. 안되도 할 수 없고. 그렇게 또 일을 하다보면 저녁을 먹어야 돼. 동료가 오늘은 간단하게 자장면으로 때우자네.. 제길 점심도 샤브샤브 먹었는데.. 요즘은 면식수행이 대세야. 밥은 주말에 몰아서 먹어야 해. 그렇게 하루 흘러가네. 운동? 주말에 아이와 함께 야구하는 거? 동네 산책길을 돌아다니다가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들어오는 거? 그래도 잠 들 때는 다짐하지. 아... 나도 복근이란 걸 만들어볼까. 아냐. 내 배에도 식스팩이란 건 있을걸 이미.. 물론 가죽과 지방에 숨어 있을 뿐이지. 헛.
- 그러나 나의 현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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