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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pr 29. 2016

견디는 삶에 대한 더러운 비유


가려워 이따금 잠에서 깨곤한다. 모기도 진드기도 아닌 무좀이다. 겨울에는 피부속에 숨어 있다가 습한 여름이면 자리잡고 기어 올라온다. 벌겋게 달구어진 살갗이 하얀 껍질을 밀어올린다. 어느 해인가부터 나와 공존하게된 운명같은 녀석이다. 선택의 기억도 없다. 그러니 쉽게 떨쳐버릴수도 없다. 통풍이 잘되게끔 잘 말려주고 하루 두세켤레의 양말을 준비하여 수시로 갈아신기도 한다. 그게 소위 '예방법'이라는데 이미 이녀석과 수년째 동거하고 있는 내게 별반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이 쓸모없는 예방법을 되새긴다. 고통이 오래되면 즐기는 방법을 배운다나. 무좀과 내가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는 증거다.
내가 스물두살때였던가. 아무튼 논산이라는 곳에서였다. 행군이었던가 아무튼 내가 다른데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잠시 방심하는 틈을 타서 녀석이 내 몸에 올라탔던 것 같다. 실례한다는 말조차 없었다. 하루종일 전투화를 벗을 일이 많지 않다보니 발가락 사이 사이와 두꺼운 군양말 속이 얼마나 포근하고 아늑했을지 굳이 체험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 속에서 녀석은 자리를 잡았다. 이십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통탄할 노릇이지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면 그 정도는 흔쾌히 치루어야 할 비용 아니겠어? 녀석은 당돌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러니 너무 싫은티 내지 말라고. 듣고 보니 그 말도 틀린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나의 운명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게 인생이란 걸 알게 되었던거지. 스무살에 불과했던. 영특한. 세상 좀 살줄 아는. 나나 무좀이나.
정로환을 갠 물에 식초를 잔뜩 부어 내앞으로 가져왔다. 친절하기도 하지. 두시간쯤 발을 담근 후 수건으로 잘 말려주고 3-4일 반복해서 하다보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배탈을 가라앉히는 토끼똥 모양의 환약에 그런 놀라운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건 노벨 의학상 수상자도, 내 주치의도 아닌 고참이었다. 무척 당차고. 가끔 놀랍도록 단순한 고참이었는데 어느 날, 발가락을 힘껏 벌린채 고단한 몸을 관물대에 기대고 있던 내게 그는 마치 자신의 발명특허를 공유해주는 사람처럼 선심쓰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떨쳐내야 할 운명이라면 내게 그렇게 쉽게 왔을리가 없지않은가. 집착하지 않아도 제 발로 조용히 찾아왔듯 갈때도 그렇게 조용하게 떨어져 나갈 것이다. 고통에 익숙해진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세숫대야 치료법을 거절했다. 고통스럽게 가려워도 심야에 안마시술소 같은 곳을 찾지는 않겠다. 는 것이 국가관이 투철했던 나의 다짐이었던 것 같다.
무좀은 아직 걸리지 않은 사람들을 노리며 내 발을 숙주삼아 여름을 난다. 다소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어쨌거나 내게 주어진 현실인 것이다. 어쩌면 당신을 노리는 무좀균에게 내가 일용할 양식과 주거를 제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역시 나의 의지가 포함된 것은 아니기에 그저 민망한 표정을 짓는 것 외에 당신에게 해줄 것이 없다. 당신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당신의 발 위로 슬며시 올라탈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녀석은 미안해 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 역시 순응할 것이다. 당당한 표정으로 이정도 고통은 참아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이 땅에서 버틸수 있지 않겠느냐고. 다들 그렇게 버티며 사는게 인생이라고. 억지로 떼어내려 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내려 하지 말고. 익숙해지라고. 포기하라고. 주장하는 녀석에게 당신도 고개를 끄덕이겠지. 인생을 좀 살줄아는 노련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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