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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26. 2016

구박받지 않으려면 잘하라고?

현명하게 노후대비하는 법

"늙어서 구박당하지 않으려면 젊어서 잘해" 혹은 "나이 먹고 밥 얻어먹으려면 힘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삶의 경험이 넘치는 분들의 지혜에서 나온 조언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런 꼰대스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구박당하거나 얻어먹거나 

노인과 개 @사진작가 허태주. 잡지 <인권>




이 농담은 성역할을 고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반시대적인데다가 듣는 사람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은퇴자의 학습된 무기력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다. (은퇴자라니. 관 속에 들어가 못으로 관뚜껑을 내리치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나는 내 삶에서 은퇴할 생각이 없다.)


우선 구박을 한다는 건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 말이 되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가 배우자의 기대와 다른 결정을 하는 경우나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잘못을 한다 하여도 그건 이해와 설득을 통한 조정의 대상이거나 혹은 화해나 용서, 단죄의 대상이지 구박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얻어먹는다는 말의 뉘앙스도 거슬린다. 서로 존중하는 배우자라면, 아내든 남편이든 어느 한 사람이 밥을 한다고 해도 그걸 '얻어먹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은 동등한 관계에서 나누는 것이지 수직관계에서 베푸는 것이 아니잖은가. (그놈의 아침밥은 얻어먹고 다니냐는 소리는 제발 좀 그만하자)

이거 혼자 못해?

일방적으로 누가 누굴 구박하고 구박당하는 관계라면 정리하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누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베풀고 또 얻어먹는(기생하는) 관계라면 그것 역시 깨끗이 정리해야 할 관계라고 생각한다. 왜 구박을 받으면서까지 비굴하게 관계를 이어가려 할까.


나이 들고 생산력을 잃은 남성은 남성성조차 의심받는다. 억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퇴직이라는 단계를 지나는 순간 바로 잉여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은 이런 유머를 통해 예비잉여로서의 '자아상'에 몸서리치게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말들이 더 처참하게 비틀어지고 회자되는 건 노후의 밥그릇(가장이라는 가련한 권위)을 보장받기 위한 남성 - 요즘은 삼식이 이식이라고 불린다 - 들의 권력욕구가 반영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사회적 발기부전‘ 진단을 받은 자신들의 처지를 한껏 희화화하고 신세타령이라도 해야 그간 누려왔던 가정 내에서의 권위를 계속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유머의 바닥에 흐르는 정서다. 그렇게 보장받는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안쓰러움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은퇴를 기점으로 갈라지는 차이라면 차이일까.


구박을 받아야 할 만큼 젊어서 잘 하지 못했다면 용서를 빌고 관계를 정리하자. 이건 남성과 여성을 떠나 마찬가지다. 밥 먹을 일이 걱정이면 미리 밥 짓고 김장 담그는 법을 배워두자. 죽는 날 아침밥까지 내가 짓고 죽는다는 생각으로 살면 된다. 그게 더 이상 가족이나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노후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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