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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29. 2016

어떤 애완동물 사육기

파리, 넬리

집 안에 못보던 녀석이 나타났다.

어제 늦게 들어와 바로 침대로 직행해서였을까. 아침을 먹고 커피를 끓이는 동안에도 나는 그 녀석을 인식하지 못했다. 녀석도 조심스러웠는지 티를 내지 않고 있다가 내가 책상에 앉으려고 할때 쯤 되어서야 슬며시 다가왔다. 여느 애완동물처럼 소리를 내거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녀석은 그저 큰 눈알을 굴리며 그저 일정한 장소를 반복해서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 나의 눈길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카우치에 깊숙히 몸을 기댄 채 음악을 듣고 있던 아내 역시 그 녀석에 대해 많은것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서로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면 굳이 내가 나서서 녀석의 존재를 따질 이유가 없었다.

공존이라는 건 내가 녀석을 수용할지 말지를 내 마음 내키는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한개의 공간을 나누어 쓸 수밖에 없는 생명체라면 나의 선택같은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녀석이 필요하다면 그는 완벽하게 우리 가정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어쩌면 녀석은 아내의 허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단지 나에게 의사를 물어볼 시간이 없었겠지. 그래서 오늘 하루,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도록 기회를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밀린 일을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따라서 녀석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도 있을 리 없었다.

세상은 너무도 고요해서 음악을 듣는 아내의 숨소리마저 자갈위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처럼 느껴졌는데, 불행하게도 나는 책상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한채 주말 오후를 보내야 했다. 녀석도 그런 나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다. 그게 마치 자신의 유일한 일이라도 되는 양, 가끔 나에게 다가왔다가 또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신경을 거스를 만큼 방해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녀석에게나 나에게나 침묵만이 가득하던 주말 오후였던 것이다. 식사시간이 되어 기지개를 켜는 내 옆으로 녀석이 다가왔을 때 나는 비로소 녀석을 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녀석에겐 날개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크지 않은 몸집이었고 큰 눈동자와 가는 팔다리가 다소 비굴해보였지만 제법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가끔 저급한 소리를 내는 종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종과는 차원이 다르게 고급한 녀석이었다. 뼈대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적 부터 에티켓 교육을 받아 몸가짐이 단정한 아이 같았다. 발뒤꿈치로 살살 걸어다니는 양가집 규수처럼 소리따위는 전혀 내지 않았으니까. 무척 조신하고 눈치가 빠른 동물인 것 같았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그의 종족의 이름을 닮은 도시에서 날아왔을지도 모른다. 혁명의 도시, 패션과 문화의 도시, 그런 녀석에게 나는 평화의 의미로 이름을 선물하기로 마음 먹는다. 넬리, 녀석에게 주고 싶은 이름이다.

넬리, 나는 너를 전혀 해칠 이유가 없어. 니가 나의 평화를 지켜준 것처럼 말야. 그저 그렇게 조용하게 날아다니다 마음 내키면 언제든 떠나가렴.

안녕~ 친절한 나의 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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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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