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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03. 2016

아가씨, 여성영화로 오해하진 말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후기

(약간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가피학적 음란과 변태적 쾌락으로 가득한 비밀의 성에서 성적 도구로 길러진 한 여성과 또 다른 의미의 도구로 선택되어 입성하게 된 여성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영화입니다. 남성들이 만들어낸 완고하면서도 질서정연한 착취의 굴레 속에서 자신들만의 사랑과 쾌락을 발견해내고 파괴와 탈출에 성공하는 여성들이라는 구도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영화전반의 구도만 보았을 때 관객들은 이 영화가 <델마와 루이스> 같은 이를테면 여성해방이나 여성인권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토리의 극적 전개와는 달리 카메라의 시선은 남성적입니다. <델마와 루이스>의 두 여전사가 끝끝내 세상과 화해하지 않고 자살을 선택한데 반해 <아가씨>의 두 여성은 체벌의 도구를 성적 도구로 응용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질서와 결별하지 않고 그저 조롱할 뿐입니다.

두 여성의 육체를 관음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무척 노골적입니다. 두 여체가 만들어내는 교성이 청각을 자극합니다. 1부에서 보여준 잇몸 골무 마사지씬은 너무나 에로틱하게 느껴졌지만 2부를 넘어가면서 딱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의 후반부 정사신은 민규동 감독의 영화 <간신>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과했습니다.

박찬욱의 영화는 항상 어둡고 기괴합니다. 충격적인 장면들 때문에 뒤끝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특히 <아가씨>의 몇몇 장면들은 <올드보이>를 능가할 만큼 기괴합니다. 포르말린으로 성기와 각종 신체부위를 보존해 놓은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과 백작(하정우)가 만나는 후반부의 고문장면은 <올드보이>만큼 지독합니다. 이 장면에서 조진웅은 올드보이의 오대수만큼이나 괴상한 모습으로 변해있습니다. 산 낙지를 뜯어먹는 장면이 오대수의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아가씨>에서는 가스시카 호쿠사이의 춘화 <문어와 해녀>의 이미지와 살아있는 문어를 배경으로 배치하여 코우즈키의 변태적 성욕을 드러냅니다.

사실 영화에서 조진웅의 출연씬은 매우 미미하지만 그 비중은 주연급 이상입니다. 영화 속 갈등구도가 아가씨와 몸종 혹은 몸종과 백작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진웅이 맡은 코우즈키의 폭력적인 성착취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두 여성의 갈등구도가 더 근원적이기 때문입니다.


목맴자살로 위장된 채 발견된 이모의 투명하리만치 깔끔한 시신의 이미지와 벚나무에 집착하는 히데코(김민희)의 투명한 표정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일본목조건축과 유럽식 주택을 이어놓은 성의 독특한 외양, 시대와 장소를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 고혹적이고 엔틱한 미술과 소품들이 눈을 황홀하게 합니다. 긴 시간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영화입니다.

김민희라는 배우는 고급스러운 페르시아 암코양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투명한 피부와 고운 선으로 이루어진 얼굴인데 백치의 아름다움도 악녀의 표독함도 읽혀집니다. 놀라운 배우입니다. 능글맞으면서 마초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하정우나 노인으로 변신해도 매력은 그대로인 조진웅의 변신도 좋았습니다.


영화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가 전체적인 전개를 빠르게 보여주는 부분이라면 2부와 3부는 1부의 시선과 전혀 다른 시선으로 1부의 스토리를 재구성합니다. 관객은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감독 특유의 방식에 자연스럽게 빠져듭니다.


최근까지 1위를 수성하고 있는 <곡성>이 엄청나게 꼬여버린 큐빅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아가씨>는 밑그림이 보이는, 그러나 맞춰갈수록 놀라운 그림이 펼쳐지는 퍼즐 같은 느낌입니다. 박찬욱 감독에게 롤리타 콤플렉스가 있나 의심했을 만큼 자극적이었던 성행위 장면만 없었다면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영화 중에 가장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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