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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06. 2016

영화 <싱 스트리트> 후기

우리 딴짓도 좀 하면서 살자, 이들처럼

<원스>와 <비긴 어게인>에 이은 존 카니의 세 번째 음악영화다. 두 편의 전작에 비해 음악이 경쾌하다. 후반부 공연씬에서는 롹음악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10대 중반의 청소년들이 그려내는 전형적인 성장스토리에 사랑과 갈등이 빠질 수 없다. 주인공은 움츠러든 찐따에서 시작하여 매력적인 남성으로 거듭난다. 물론 그의 성장에는 매혹적인 뮤즈와 음악이 함께 한다.


비긴어게인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지만, 존 카니는 음악, 특히 밴드음악에 대해 이해가 깊은 감독인 것 같다. 어쿠스틱 기타에 허밍으로 시작하여 베이스와 드럼이 붙고 건반과 기타가 겹쳐져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장면을 정말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덕분에 영화를 보다말고 친구놈 생각이 났다.


음악하는 친구다. 고등학교 때 잉베이맘스틴을 흉내내던 녀석인데 대학을 가서도 꽤 알려진 학교밴드에서 베이스를 쳤다. 이 친구가 피아노부터 시작했던 친구라 모든 악기에 능수능란하다보니 전공과는 무관하게 음악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다. 방송에도 가끔 밴드로 나오고 유명 가수의 음반에 세션도 뛰고 실용음악과에 출강도 나간다. 주로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연락할 일은 거의 없지만 작곡을 해야 한다며 글써둔걸 달라고 할 때가 가끔 있다. 말 같지도 않은 내 시 나부랭이나 잡문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한편도 작품화 된 적은 없다.  


이 친구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 좀 재미있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인생도 나쁘진 않구나. ‘딴짓’하고 살아도 행복하면 그만이구나.


고등학교 땐 친구녀석이 기타를 둘러메고 어슬렁거리는 게 꽤 멋있어 보였지만 나에겐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나마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대입시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금기의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었다. 어영부영 대학에 들어가 문청 흉내나 내다가 뒤늦게 정신이 들고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되어 허겁지겁 취업을 했다. 그 이후의 삶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삶이라 고백하기에도 민망하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직장에 충실했으며 그렇게 늙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진짜 재미없는 소설이 있다면 아마 내가 살아온 이야기 같지 않을까.


대신 녀석은 나 못지않게 완고한 부모님 밑에서도 자기의 꿈을 향해 질주했다. 공부도 꽤 잘하던 놈이라 담임선생님까지 나서 뜯어 말렸지만 녀석의 ‘딴짓’은 멈추지 않았다. 잘 나갈 수 있었던 전공을 고사하고 밤무대 딴따라 소리를 들어가며 견딘 녀석의 젊은 날이 지금 와서는 오히려 부럽게 느껴진다. 물론 녀석이 상업음악계에서 큰 별이 되거나 한 건 아니다. 아직 덜 알려졌고 그래서 곡을 만들어놓고도 묵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녀석이 부러운 건 살아가면서 단 한번이라도 자기 운명을 걸고 돌파해본 경험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잠깐 만나 고작 커피 한잔 나누며 사는 이야기나 씨부리다 헤어졌지만 오늘 영화 <씽 스트리트>를 보면서 유독 그 친구가 생각났다.


만일 누군가 자신의 운명을 돌파해 나가기 위해 속에 쌓인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분출하려할 때,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일지라도) 그것을 ‘딴 짓’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세상에 한 인간이 ‘사회적의미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일에 ‘딴 짓’이란 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그 걸 말해주고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런 의미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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