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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08. 2016

<영화. Her.에 대한 짧은 감정이입>

1. 아아 컴퓨터와 씹 할수만 있다면...<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최영미는 이렇게 탄식하지. 미친거 아냐? 그땐 대충 읽어 넘겼지만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던 싯구가 불현듯 떠오르더라구. 결국 컴퓨터와 섹스를 하는 남성의 이야기, 아니 컴퓨터 그 자체이면서 인성을 갖춘 '그 녀'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네.

2. 어떻게 그런 역겨운 표현을 할수 있냐고? 그저 섹스의 순 우리말일 뿐이야. 욕설로 쓰이고 있을 뿐. 어차피 우린 육체를 가지고 있잖아. 그건 역겨운게 아니라구.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지. 자자. 다음 얘기를 하자고.

3. 남자는 외로워. 타인의 스토리를 버무려 편지 대필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그 남자는 이혼의 위기에 봉착해있고, 늘 혼자 눈뜨고 밥먹고 혼자 잠들지.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감정 없는 폰섹스를 즐기기도 하지만 그것처럼 허탈한 게 또 있을까. 테오도르는 딱 이시대 보통스런 중년 남성의 모습이야. 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그저 마음의 위안? 아니면 삶을 나누는 것?

4. 여자는 괴로워. 육체가 없기 때문이지. 자신의 생각과 삶은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기획된 것들이야.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애초에 프로그래밍 된 것 아닐까. 한꺼번에 육백명이 넘는 사람과 사랑할수 있는 그녀는 자신의 그런 본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 때문에 힘들어. 결국 둘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거. 그게 힘들지만, 그것 때문에 둘이 사랑하게 된거 아닐까.

5. 컴퓨터와 사랑을? 미친거 아냐? 그렇게 말하겠지만 어차피 사랑이란건 미치지 않고 할수 없는거잖아. 제정신 가지고 사랑할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원만한 계약, 조건이 부합하는 안락한 관계일 뿐이라고. 그러니 어떤 형태든 사랑은 미친짓이라고.

6. 육체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마음을 통해 육체를 나누는 거. 마음과 육체. 그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란다. 원나잇 스탠드가 사랑이 아니듯, 섹스 없이 밀당만하고 썸타다 끝나는 거. 그거 사랑 아니라고.

7. 운영체제가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 그 잠시간의 공백을 견딜수 없지? 연락이 안되면 전전긍긍하는 우리들과 뭐가 달라. 그러다 오해하고 그러다 안도하고, 그렇게 가까워졌다 또 멀어지고. 결국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 아니겠어. 어차피 우린 다른 차원에 존재하던 사이였으니까. 너와 나. 기원과 존재형태가 달랐던. 우리.

8. 옆에 있어줘서 고맙고 행복해. 우리 딱 맘 닿는데 까지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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