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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16. 2016

숙이이모 닭강정

간판 읽어주는 연체동물 #1

‘숙이’의 이모가 하는 닭강정일까 아니면 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이모’가 하는 닭강정일까 생각한다. 숙이의 이모가 하는 닭강정이라면 숙이는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내세우려는 이모에게 기꺼이 사용동의를 해주었을까 아니면 이모가 무단으로 자신의 이름을 도용한 후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고 수익의 일부를 자신에게 배당해달라고 요청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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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모라면 왜 그녀는 스스로를 ‘이모’로 규정한 것일까 궁금해 하다가 누군가의 ‘엄마’로 부를 수 없는 미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까지 생각이 미친다. 자신의 이름만을 전면에 내세우기 부끄러운 성격이었다면 아마 그녀는 모든 것에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신중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사람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입을 크게 벌려 닭다리를 뜯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무척 수줍은 여성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입 주변에 고추장소스를 묻혀가며 뜯어야하는 양념치킨이 아니라 한입에 쏙 들어가 오물거리며 먹을 수 있는 닭강정집 사장이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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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숙이이모 닭강정>은 번듯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아니라 길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노점에 불과하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노린내 나는 닭을 튀기기에 쉽지 않았을, 그러니까 무척 수줍은 성격의 그녀가, 수년에 걸쳐 벌어진 노점철거반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아 급기야 관청으로부터 ‘쾌적한 거리만들기 등록노점’으로서의 위상을 쟁취해낸 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사건이었다. 더 놀라운 건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길상사 올라가는 오른쪽 대로변에 위치한 노점들 사이에서 <숙이이모 닭강정>은 간판을 가진 유일한 집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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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녀가 이 집을 차릴 때를 상상하면 이렇다. 그녀는 목구멍 앞에서 부끄러운 성격 따윈 애초에 접어두어야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숙이이모 닭강정>은 일종의 벤쳐 사업인 셈이다. 장사밑천도 변변하게 없고 언제든 쫒겨 날 수 있는 ‘위험’한 그녀의 상황이 그녀를 ‘모험’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몇 살 때였는지 그건 알 수 없다. 그녀는 아파트촌 입구에 비닐막을 친 리어카 한 대를 가져다 두었고(용감하게!) 튀김기와 커다란 솥과 식용유 몇 통을 가지고 도로의 일부를 ‘점유’했다(과감하게!).

‘숙이’라고 불러야 할지 ‘이모’라고 불러야 할지 여전히 애매한 이 분은 사람들이 서서 닭강정을 먹는 동안에도 자신의 상품을 어떻게 더 어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경쟁업체들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을 생각해냈다. 소심한 사람답게 자신이 점유한 장소 앞에 <숙이이모 닭강정>이라는 표식을 새겨둔 것이다. 혼자 서서 닭강정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 관찰한 결과다.

그러니까 지금 보이는 이 사진은 전형적인 벤처 사업의 창업 스토리를 단 한 컷으로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숙이네 이모는 오늘도 닭은 튀긴다. 몸빼바지에 수건을 목에 두른 그녀는 원래 소심한 성격을 가진, 무척이나 수줍음이 많던 여인이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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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읽어주는 연체동물 1 : '숙이이모 닭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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