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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19. 2016

영화 '우리들' 후기

뭣이 중헌지 알려주는 영화

피구는 잔인한 게임이다. 공격의지가 없거나 약한 자는 날아드는 공을 받거나 피해야 한다. 살아남기 쉽지 않다. 표적을 정하고 공격을 하는 경우엔 당하는 입장에서 속수무책이다. 왕따를 게임에서 배제하기에 더 없이 좋은 게임이다.

선이는 왕따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아이들 무리에서 멀뚱하니 구경만 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방과후엔 동생을 돌봐야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지도 못한다. 팍팍한 살림살이 때문에 핸드폰 사달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선이는 속이 깊은 만큼 상처도 깊다.

지아는 새로 전학온 아이다. 선이와 처음 만나 우정을 나누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이와 멀어진다. 지아도 전학 오기 전에는 왕따였다. 이혼한 부모 때문에 할머니 집에 얹혀산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아니지만 아이가 감내하기엔 현실이 녹록치 않다. 자신의 상처를 알게 된 선이가 지아는 부담스럽다. 결국 지아도 무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둘은 라인 밖으로 쫒겨난 존재다. 아무도 같은 편이 되려 하지 않는데다가 게임이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공에 맞아 아웃되기 일쑤다. 멀뚱히 서 있다가 금을 밟았다는 누명을 쓰기도 한다. 라인 밖에 서 있는 두 소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경계한다.

차별과 배제에 익숙해진 두 소녀는 왕따라는 한 프레임 안에서 가장 멀리 자리잡는다. 그 것이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그녀들은 생각한다. 그렇게 힘없는 아이들이 영원히 주변부에 머물며 소외되는 것이 학교가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피구의 룰이다. 차별하고 차별받는 육체는 그렇게 단련된다.

그래도 손톱엔 봉숭아 물이 아직 남아있다. 선이와 지아가 사이좋은 시간을 보낼때 들였던 추억의 흔적이다. 다시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선이가 지아의 상처를 건들이면 지아가 선이의 상처를 후벼파고 두 아이의 신경전이 반복된다. 선이는 어쩔줄 모르지만 오히려 그에 대한 해법을 여섯살 동생은 알고 있다.

선이가 매일 친구에게 맞아 멍이들고 오는 동생 윤이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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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 너도 때려야지. 왜 맞고 가만히 있니?"
"나도 때렸어"
"그런데 왜 눈에 멍이 들었어?"
"내가 때리니까 친구가 또 때린거야"
"그러면 너도 또 때려야지"
....
"그러면 언제 놀아? 난 놀고 싶은데 때리고 또 때리고 그러면 언제 노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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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동생 윤이의 이 천진한 발언에 박장대소한다. 뒤통수를 치는 깨달음의 웃음이다. 선이의 동생 윤이는 "무엇이 중헌지"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지 모른다.  서로 부대끼고 상처를 주고 받아도 결국 손내밀고 함께 해야 하는 존재들을 '우리들'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리다고 만만히 볼건 아니다.

아이들의 연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마치 그들의 생활 안으로 투명인간이 카메라 한대 들고 들어가 찍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윤가은 감독의 전작들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틀림없이 단단하고 야무진 단편영화들을 만들어온 감독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0여개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이런 영화는 좀 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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