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즐거움과 고통은 하나이다

by 도 출 남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구약 성서 전도서 3 : 1~8의 구절


모든 것은 양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쪽 면이 있으면 저쪽면이 있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겠는가...


근래 두려움 , 걱정 , 근심이라는 것이 나의 주요 화두였다

이유 없는 불안과 초조함이 나를 엄습해왔다

시설관리직으로 일하는데 야간 근무하는 새벽에 화재경보가 뜬 것이다. 그 벨소리에 번쩍 잠이 깨서 부랴부랴 상황 파악하러 달려가 보니 단순 오작동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상황이라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거리다 밤을 꼬박 새우는 결과를 가지고 와버렸다.

( 나중에 선임자에게 물어보니 아주 단순한 절차만 밟으면 되는 것이었음을....)

그때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되었는지 다음 야간근무 들어가는 날 엄청 긴장이 되고 알 수 없는 걱정이 강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때 화재경보는 또 발생했다. 다행히 주간이라 같이 근무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수월하게 일 처리는 되었지만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를 아니했다.

그 야간 당직날도 잠을 쉽사리 청할 수가 없는 밤이었다.

다음번 야간 당직 출근 때는 스트레스가 좀 덜해졌으나 그래도 먼가 강하게 엄습하는 감정은 나를 짓눌러왔다.

머리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고 있구나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서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지 했지만 감정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평소에 명상을 꾸준히 하고 있어서 ( 지금 / 여기를 사는 법 ) 깊게 명상에 들어갈 때면 감정이 사그라지는 것 같았지만 일상 활동을 하다 보면 다시금 감정은 고개를 들고 나를 괴롭혀왔다.


왜? 명상을 하는데 나는 지금/여기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연관시켜 미래에 일어날 상황을 예상하며 괴로움에 빠져있을까...........

.........

....

..

어느 순간 그걸 알게 되었다. 명상의 목적은 감정과 고통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똑바로 직시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게 목적이라는 것을

나는 명상이라는 것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없애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기에 아무리 명상을 해도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금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놀랐던 감정을 위로해주는 말 한마디를 건넸다... " 석희야 그때 참 많이 놀랐지..... 많이 힘들었을 거야.... 밤에 혼자 그걸 감당하느라..... 수고했어.... "

감정을 다독거려주니 쿵쾅거리던 감정이 많이 진정되고 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흔히들 즐겁고 좋은 감정 같은 것은 계속 붙들고 싶어 하고 , 불쾌하며 기분을 좋지 않게 하는 감정들은 부정하고 떨쳐버리려고 애를 쓴다.

출근길 버스에서 좋은 것을 붙들려하고 나쁜 것은 부정하려 한다는 알아차림에 대해 명상하다가

인생의 진리에 대해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즐거움과 고통은 하나이다~

그것은 다르게 보이지만 모양만 달리할 뿐.....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전도서의 구절들처럼 모든 것은 상반된 면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한 면 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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