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다꾸

by 양윤영

지금까지의 모든 취미가 그랬듯이, 어느 날 갑자기 다꾸가 내 삶에 들어왔다. 하느님도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듬이 내게 한 영상을 점지해준 것이다. 그 유튜버는 스크랩꾸를 하는 분이었는데, (스크랩꾸가 뭔지 궁금하면 아래 사진을 참고하라) 디자이너로 일했었던 내겐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다이어리의 종류는 크게 6공(혹은 3공, 10공 20공 등등)다이어리와 제본형 다이어리가 있는데, 내가 첫번째로 본 영상은 6공 다이어리였다.


예전의 나는 다이어리에 구멍을 뚫는 행위를 아주 끔찍하게 싫어했고, 6공 다이어리는 초등학교때나 유행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영상 속 다이어리는 존나 존나 힙했다. 정성을 다해 속지를 꾸며놓고 아무렇지 않게 구멍을 뚫어 속지를 훼손하는 게 왜 이렇게 멋져 보이는지! 나는 당장 스크랩꾸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게 취미란 갑자기 찾아와서 갑자기 떠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엥간하면 저렴한 방법으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첫 다이어리에 한 스크랩꾸, 비닐에 들어 있는 건 갑자기 쪼개져 나간 내 이빨조각이다.


그래서 우선은 다이소에 갔다. 다이소는 다꾸러들 사이에서 가성비 맛집으로 유명한데, 무려 숫스(숫자스티커)가 4장에 천원인 곳이다. 취미를 처음 시작하면 가장 좋은 점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도구를 쓸어 담을 수 있다는 것인데, 다이소는 그 도구들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쓸어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 가위와 핀셋, 절단기, 스티커를 쓸어 담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6공 다이어리를 집기 위해 다이어리 코너로 향했다.


그리고 깨닫고 말았다. 내가 다꾸에 빠진 게 9월이라는 사실을. 9~10월은 다이어리가 없다. 물론 모든 제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이 시기즈음해서 다음 해의 준비를 위해 제품들을 단종시키고 리뉴얼을 준비한다. 혹은 이미 그 해의 수량이 다 떨어져서 품절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다이소도 그랬다. 다른 동네의 다이소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사는 지역은 그랬다.


아니, 3층짜리 다이소에 어떻게 6공 다이어리 하나가 없을 수 있지? 매우 짜증을 내며 나는 근처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다행히 몇 가지 제품이 있었는데 너무 비쌌다. 그래서 나는 울면서 다이소에 물건이 들어오는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대신 인터넷에서 스크랩꾸를 하기 위한 스티커들을 조금 둘러 봤다. (사실 다이어리도 인터넷에서 사면 되는데 비싸게 주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지로 참았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련했던 것 같다.) 귀여운 곰돌이 스티커들도 보였지만, 당시엔 절대 그런 스티커는 사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하지만 보통 이런 말을 하면 나중에 사게 되어있다.) 대신 좀 더 '힙'한 스티커들을 둘러 보았다. 사진으로 만드는 오브제 스티커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장 결제를 갈겼다. 뿌듯했다. 그리고 그 때쯤 운이 좋게 다이소에서 a7사이즈의 깜찍한 6공 다이어리를 구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한 권 꾸며보고 천천히 취미를 가꾸어 나가야지, 하고 다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그러하듯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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