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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Nov 10. 2023

배 터지게 떡 먹는 호랑이

제가 할게요 그거.

 몇 년째 고3이었다. 킬러를 사냥해야 했으니. 해야 할 일이 나열된 틈마다 ‘까꿍’ 하며 얼굴을 들이밀던 그것. 있는 줄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돌아보면 서 있는 저승사자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반갑기도 무섭기도 했다. 성취감과 좌절감을 한 세트로 안겨주기에. 문제 풀이 수업을 앞두고 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문제 푸는 입시 강사도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1 시험준비에 수능 킬러 문제라니.

    

“ 엄마, 우리 놀자.”

“ 미안, 엄마 공부해야 해. ”

선생님이 무슨 공부를 하냐는 아이에게 언니 오빠들한테 알려주려면 엄마가 먼저 공부해야 한다며 매번 구렁이 담 넘어갔다. 팽팽 눈 돌아가게 바쁜 날이 늘수록 아이의 습관들은 자고 난 이부자리 같았고, 안타깝게도 아이에겐 당장 웃는 손녀를 보고 싶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다. 신생아 때부터 목숨 걸었고, 수업이 끝나면 미친년처럼 달려와 애 자기 전에 그것만큼은 지키리라 이어온 책 육아는 개나 줄 판인데 영상에 눈을 떠버렸다. 이대로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 마침 킬러 사냥꾼 놀이도 재미없어졌는데 남편은 딱 네 살짜리 아이처럼 사람을 볶아대고 있었다.

더는 혼자 살기 싫다고.


아이 같기도, 나 같기도. 때론 남편 같을 수도. _____@pixabay

 

 만 8개월째 타향살이 중이다. 남편과 아이를 전쟁터로 내보내고, 눈앞의 폐허가 된 전쟁터를 재건하고 나면 들리는 소리, ‘이젠 뭐 하지?’. 여유로운 잠깐의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기면 좋으련만, ‘하고 싶은’ 보다 ‘해야 하는’이 무조건 우선인 재미없는 인간이기에 쉼조차 어렵다. 인생을 나보다 더 재미없게 사는 엄마의 말로 배워서 그런가.


요즘 들어 늙다리 같은 ‘고향’이란 단어가 왜 이리 애틋하게 느껴지는지. 힘들었던 킬러 사냥도 혼자 하는 육아도 그곳이어서 버텼었나 보다. 셀프 고립이 되고 나서 알았다. 맞다.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끌어당김을 끌어당겼는지 그런 영상들만 자꾸 뜬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에 오는 그 길을 상상으로 채웠다. 남편도 아이도 내 구역에서 함께 하는. 빈틈을 채워줄 무언가를 시작해야 했다. 배우는 자들이 이 땅을 지배한다고 하지 않는가. 영화 트와일라잇의 한 장면처럼 한쪽 벽을 학사모로 채우는 건 로또 맞은 다음으로 미루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시작.


‘배우는 자’들이 이 땅을 차지한다.
 ‘배운’ 자들이 아니라 ‘배우는 자’ 들이다.
- 에릭 호퍼


 잠재의식이 물어다 준 브런치프로젝트. 작지 않다. 아니 큰 산이다. 다시 까꿍쟁이가 나타났는데 이번엔 저승사자보다 더한 놈이다. 생각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것 같다. 쌓아 놓고 외면하는 날이 지날수록 똥줄이 탔다. 집에 무덤이 생기지 않았냐는 나의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니오. 동기들은 발행도 속속, 과제도 뚝딱인데 우리 집에는 빨래 무덤은커녕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였다. 금요일은 우리 가족 영화 보는 날이니 재끼고 토, 일, 월, 화. 마음속 커서 깜빡임 속도가 빨라진다. 두렵지만 마주해야 한다. 더는 물러설 곳도 없으니 외면하기 그만. 나도 거실 바닥에 머리카락과 먼지로 카펫 하나 엮어보자.

   

 맘먹고 마주하면 술술 써질 줄 알았다. 이런, 읽고 쓰던 사람이 아니면서 욕심내면 벌 받지. 동기들 글은 어찌나 유려한지 읽을수록 나는 쪼그라져 요즘 유행한다는 빈대만큼 작아졌다. 브런치 작가 합격을 축하한다는 남편 앞에서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며 으스대던 꼴은 어디 가고, 치사하지만 쓰려면 읽어야 했다. 전에 없이 메모를 하고 스크린샷으로 표현들을 모았다. 정말 빈대 같네. 췌. 자신감이 늦가을 낙엽만큼이나 우수수다. 열심히 써서 후에 누군가가 내 글에 빈대 붙는 걸 허락하리라.     


 용기 내 발행한 글을 사람들이 찾아주길 바랐다. 발행이라는 산 하나를 네발로 기어 올라갔지만 넘었다 싶어 후련했는데, 그 앞에 구독과 댓글 산이 떡 좋아하는 호랑이처럼 훅 나타났다. 속마음은 비굴한 호랑이다. ‘제발 떡 하나만 주세요’. 알람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변기 청소만큼이나 싫어 당분간 단톡방에서도 고개를 돌렸다. 언제 이렇게 단호박 같았는지.  마음먹었어요 제가.’ 쓰다 보면 잘 쓰겠지. 떡은 함지박 한가득 알아서 들어올 테고, 그 떡을 다 집어 먹고 앉아 있으면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지겠지만 행복할 거다. 읽고 쓰는 사람이 되자. 다짐만 풍년이네.

     

 몇 주 사이 다른 사람 같다. 그녀가 옳았다. 여전히 나지만 매일 간절히 바라는 상상에 인세 받는 작가를 끼워 넣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든다. 장면 하나에 사유를 하고 일상이 글감이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공간, 비슷한 일상인데 아주 많이 다르게 보인다. 꼭 마법에 빠진 것 같다.

“오늘도 글 쓸 거야? 알았어~”

혼자 묻고 알아서 답하는 남편은 밤마다 노트북을 끌어안고 작가 행세를 하는 내게 버림받은 것 같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런치스토리 글을 힐끗거리다 유튜브 영상을 보느라 늦게 자놓고 글 쓰느라 피곤하다며 히스테리도 당당하게 부린다. 아이에겐 내심 미안했는지 숙제하라는 독촉을 하려던 입술이 들썩거리다 만다.


 살아갈 시공간 틈마다 숙제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물론 좀 괴롭겠지만, 저승사자 보다 더 한 이놈이 친구가 될 때까지 하루 1cm씩 자라는 나를 기대하는 요즘. 

    

매일 새로고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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