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누가 선택할 수 있을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최선은 달라져

by 다살

우리 엄마는 아프다.

3년 전에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3~6개월 정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살뜰히 챙기지 못한 죄책감으로 몸서리치던 어느 날의 저녁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에는 시골병원에서 "큰 병원 가보세요."라는,

시골 사는 어르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을 듣고

지방 대학병원 가서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고, 부랴부랴 서울아산병원 외래를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항암치료는 2주에 한 번씩 항암주사를 맞는 것인데

매번 항암주사 맞고 나서 일주일은 밥도 못 먹고, 기운도 없이 지내다

일주일 겨우 회복하고, 다시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또 일주일 지쳐 지내고, 회복하기를 3년 넘게 반복하고 있다.


2년 지났을 시점에 한번,

너무 힘들어서 쉬었다 주사를 맞고 싶다 해서 3개월 정도 중단하고 시골로 다시 내려갔었다.

그러다 다시 혈변이 시작되어 다시 서울로 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다시 시작하고도, 거의 1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엄마는 주변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진저리 나게 항암주사를 지겨워하고 있었고,

항암주사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인 구내염 때문에

최근 1개월 간 흰 죽만 먹으며 버텼다.

이 최근 한 달간의 흰 죽 기간이 엄마의 살 의지를 많이 꺾은 것 같다.

엄마의 유일한 낙은 조금 회복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이것저것 먹고 기운 내던 게 전부인데

한 달을 입안의 고통과 먹지 못한다는 심리적 고통으로

다른 의지까지도 많이 꺾인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맞고 싶어", "엄마 팔자에 이만큼 했으면 할만큼 했어"


환자의 선택을 지지하는 것이 최선일까?

엄마는 이번엔 정말 결심한 것처럼 말했다. 나를 비롯해 다른 자식들이 여러 번 말해도 단호했다.

그래, 엄마도 많이 지쳤지

항암주사를 맞고 난 후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맞을 때가 되어가면 찾아오는 예기불안과 고통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기도 하겠지

엄마가 방에 자러 들어가 혼잣말로 "내가 죽어야 끝나지"라는 그 말이

정말 지금 엄마의 심정이구나 싶다.

사실 나 같아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내가 겪는 고통을 누가 알겠냐, 나 아픈걸 누가 다 알겠냐, 나만 알지

나 아픈걸 누가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선택을 바로 수긍하고, 인정해 줄 순 없었다.


환자가 삶을 더 유지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최선일까?

엄마는 병원 다닌다고 자식들 불편하게 해서 더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치료를 중단하고 시골로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자식들이 지금보다 편해질까?

그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엄마 말대로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지금 상태라도 유지해 주는 것이

우린 훨씬 좋은데 엄마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 모두들 여러 번 설득했다. 어느 순간에는 말만 꺼내도 표정이 바뀌며

듣기도 싫다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제 진짜 결정한 건가.

자식들 말은 들어주지도 않으니 사위까지 나서서 1시간을 설득했다.

사위가 하는 말이니 듣기는 하는데 엄마는 아직 항암치료를 계속하겠다는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지난주 외래 때 같이 못 들어갔었는데,

엄마는 담당 교수님께 항암주사를 그만 맞겠다고 했고

교수님은 가족과 상의해서 결정하고, 다음 주에 결정사항을 알려달라고 했다 한다.

그게 이번주인데...

이따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다시 물어봐야 한다.


"엄마, 생각해 봤어? "


엄마가 어떻게 결정했을까?

물어봐야하는데, 엄마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선뜻 물어보기가 어렵다.


이번에는 엄마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존중해줘야 하는 걸까?


환자의 지금 삶에서 최선은 무엇인가?

환자가 생각하는 최선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 최선도 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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