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65slash365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gine May 31. 2019

4. <près d'ici, Lyon>


이어폰을 항상 갖고 다닙니다.

그렇다고 항상 음악을 듣진 않아요.

음악을 듣지 않을 땐  radio france_france inter를 듣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YTN 같은 느낌으로, 시간별 브레이킹 뉴스나 날씨들을 말해주는 채널이에요.

막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아침에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하며 항상 틀어놓았던 습관이

지금은 한국에서의 출근길 혹은 퇴근길 막간에 듣는 걸로 이어지고 있어요.


지난주였을까요,

익숙한 지명이 들렸어요. 'bellcour'.

리옹 지명은 날씨예보 때 빠지지 않고 들을 수 있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벨쿠르 광장이 나온 건 그곳에서 무슨 이슈가 있단 거였죠.

귀를 쫑긋해 들으니 벨쿠르 광장 근처 빵집 앞에서 폭발물이 터졌고, 다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내용이었어요.


프랑스의 이민과 테러 - 이 주제에 짚어보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겠죠 ㅎㅎㅎ

제가 피부로 느꼈던 내용에 대해서 살짝 언급하자면, 그건 다름 아닌 '인종차별'이었어요.

'어린 동양 여자'의 카테고리에 속해진 다는 걸 처음 인식할 수 있었죠.

간접적인 차별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크게 다가왔던 건 직접적인 것들이었어요.


조심한다고 해가 지면 밖엔 잘 나가지 않았고, 나가게 되더라도 여럿이 무리 지어 다녔구요.

낮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니하오'라던지 '칭챙총' 같은 말들이 저를 향했던 적이 많았고,

가장 심하게 겪은 건, 귀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 소리를 지르고 가는 걸 당한 거였어요.

당시 이 리터짜리 페트 물병 두 개를 한 아름 앉고 있었는데, 너무 놀래 다 떨어뜨리고 말았더랬죠 ㅎㅎ


헌데 신기했던 건, 제게 그런 직접적인 행위를 한 사람들의 행태는

한결같았다는 거예요. 그들도 동양인인 제가 보기에 프랑스의 이민자들 같았죠.

언뜻 스쳐 들은 바로는, 프랑스 근처 알제리나 기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동양인 이민자에 대해 피해의식을 느낀다는 거였고 - 일자리를 뺐어간다나요 - 그래서 특히나 더 그런다는 거였어요.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같은 행위를 받았을 때, 그냥 그러려나보다, 하고 또 쿨하게 넘기게 되더라구요.


재작년 휴가로 파리를 갔을 때도 역시나 '니하오'와 '칭챙총'을 들었지만

'응 고마워' 혹은 '행운을 빌어'라는 말로 맞받아 칠 여유도 생겼더라고요.

휴가를 같이 갔던 친구는 예전 리옹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그런 절 보고 퍼뜩이나 놀래더라구요.

놀란 얼굴을 보며 제가 말했죠, "그래도 무섭긴 해서 욕은 못하겠단 말이지"

ㅎㅎㅎ



+ 6월 7일 00:07 추가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매거진의 이전글 3. <il s'appelle Pau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