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13
나는 열성 야구팬이다. 콕 집어 말하자면 두산베어스 팬이다.
2008년부터 잠실야구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벌써 17년 차다.
두산베어스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는데 바로 '더스틴 니퍼트'라는 외인투수다.
2011년 두산베어스에 용병투수로 들어와 2017년까지 무려 6년을 뛴, 외국인으로는 매우 오래 머무른 선수에 속한다. 보통 1-2년만 머물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니까..
더스틴 니퍼트는 2018년 갑작스레 KT위즈로 이적하게 되었고, 당시 두산 팬들은 아쉬움과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니퍼트 정도면 영구결번감에 두산에서 은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팬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야구팀은 승부를 겨루는 곳이기에 팬들의 목소리는 허공에 떠돌다 가라앉고 말았다.
그랬던 니퍼트가 최근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현역시절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준단 소식에 팬들의 관심이 많이 쏠렸던 듯하다. 난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기에 정확히는 모르지만 풍문으로 들었다.
무려 두산을 떠난 지 7년 만에 갑작스레 두산에서 니퍼트의 은퇴식을 해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니퍼트의 친정 두산과 두 번째 친정팀인 KT가 맞붙는 경기에서 의미 있는 은퇴식을 열어준다니..
두산팬들은 반색하며 3루까지 꽉 채워 예매를 하고 은퇴식 자리를 채워주었다. 난 모임이 있어 가보진 못했지만...
현역선수로 옷을 벗은 지 6년이 지나 갑자기 치른 은퇴식.
당시 두산에서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이 함께 해주었고, 선물을 전달하고, 카퍼레이드를 하며 나름 성대하고 화려하게 은퇴식을 치렀다.
특히 니퍼트와 배터리가 되어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양의지는 은퇴식 내내 펑펑 울었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화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참 희한하지.. 니퍼트가 은퇴한 지 벌써 6년이 지났고, 그가 이제 현역선수가 아니란 사실을 모두 안 지도 그 만큼 6년 지났음에도 은퇴'식'을 한다는 이유 만으로 모두가 슬퍼하고, 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해 함께하는 그 모습이.
은퇴와 은퇴식은 분명 다르다.
이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불과 일주일 전 친한 후배와 이야기 나눈 기억이 떠올랐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사례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후배는 작년에 함께하던 장애인 4분이 돌아가시는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어쩌다 그 얘기가 나와 잠시 톡을 주고받았더랬다.
"언니 나 그때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 동안 업무전화를 못 받았어. 같이 지원했던 구청 주무관도 많이 울고 엄청 힘들어하더라고"
"근데 언니, 그래도 난 장례식장 다녀오님가 마음이 정리되고 많이 편해지더라. 지금도 그분이랑 마지막으로 카페에 앉아 차 마시면서 찍은 사진이 내 폰에 있어"
은퇴를 하는 것과 은퇴식을 하는 것.
돌아가신 것과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이렇듯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식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우리 앞에 주어진 상황을 직면하고, 과거를 돌아보고, 충분히 정리하며, 상대를 떠나보내주고 내 마음을 추스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이 '식' 안에 있는 것이다.
니퍼트가 6년 전 은퇴했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알고 있지만 은퇴식이라는 상징이 그와의 시간을 돌아보고 잘 정리할 수 있는 시공간이 되어준 것처럼 말이다.
죽음교육 준비를 위해 난 이곳저곳에서 죽음 관련 교육, 워크숍을 다니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내용 중 꼭 '나의 장례식 준비' 주제가 포함되곤 한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나는 장례식을 안 치를 거다. 봉안당도 싫다 그냥 산골 했으면 좋겠다. 기계적 상업적인 장례는 싫으니 그냥 조용히 가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밝히곤 한다.
나 또한 올 초 까지는 그랬던 듯하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너무나 상업화되고 자본주의적인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큰 몫을 했다) 그런데 장례식을 다니다 보니.. 장례식의 주인은 죽은 자가 아닌 유족이며, 그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며, 밉기도 하고 속상했던 마음을 달래는 자리가 장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생전 부모님께 불효했어도, 돌아가실 때 비싼 수의와 리무진에 모시면서라도 부모님께 사죄하고 죄의식을 덜고자 하는 자식의 마음처럼 말이다.
장례식은 그분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달래고 정리하는 시간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발달장애인들은 이런 장례식 방문에 배제되는 경우가 많기에 고인과 작별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죽음'이란 화두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니 게임, 영화와 같은 자극적 매체를 통해 왜곡된 죽음(악한 존재의 죽임 당함은 정당하다 등)을 먼저 받아들이기도 한다.
얼마 전 읽은 발달장애인 자녀의 죽음교육에 대한 부모중심 사례연구 해외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등장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지인의 장례식에 꼭 데리고 다녔기에 죽음은 당연한 것이고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참여자 어머니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고인과의 작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장례식장에 꼭 데려가신다 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장례문화에 여전히 가부장적, 유교적 뿌리가 깊고 죽음을 터부시하거나 두려운 존재로 여기기에 장례식 방문을 조심스러워한다. 이 같은 배경이 발달장애인들이 장례문화를 남의 일로 여기게 만들었다.
발달장애인들이 가족, 지인의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일이 보다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기를.. 발달장애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게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을 간접경험하는 의미 있는 경험임을 알아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