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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habgirl May 26. 2024

당신의 임영웅

발달장애인 사별교육을 준비하는 마음-12


우리나라 사람 중에 임영웅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국민가수인 임영웅이 콘서트를 한단다. 

우리 집 가까운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말이다. 늘 운동하러 오가는 월드컵경기장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부근에 삼삼오오 모여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 어르신들을 보고 나서야 콘서트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임영웅을 상징하는 하늘색 굿즈를 착용하고, 손에 들고, 머리에 두르고 계신 어르신들. 아이돌 가수 못지않게 굿즈도 참 다양했고, 어르신들 취향에 맞게 요란하기보다는 실용성이 돋보였다. 

콘서트 장을 오고 가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행복이 한가득이셨다.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던데, 광클신공을 발휘해 티켓을 확보해 준 자식들이 자랑스럽고, 좋아하는 임영웅을 볼 수 있으니 자랑거리가 두 배는 되실 테지.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텔레비전을 전혀(야구 빼고는ㅎ) 보지 않는지라 임영웅의 무대를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다. 일부러 찾아본 한 두 번 정도? 그 외에는 그냥 짤로 스치듯 본 게 전부다. 내 눈에는 임영웅처럼 잘 부르는 가수들도 많은 것 같은데 대체 왜 어르신들은 임영웅에 이리 열광하는지 사실 이해가 잘 안 됐다. 

때마침, 나의 직장에는 많은 어르신 장애인들이 오고 가시기에 종종 여쭤보곤 했다. 

"임영웅이 대체 왜 좋으신 거예요? 매력이 뭐예요 대체?" 

어르신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 노래 잘하잖아. 그리고 영웅이는 노래로 위로해 주는 그런 게 있어" 

아하 이거였다. 위로. 위로해 주는 사람. 그게 바로 임영웅이 가진 힘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힘들었죠. 애썼어요 이제 좀 편히 쉬세요" 

라는 말을 해주는 듯한 존재. 당신이 살아온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으니 이제 쉬라 말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삶의 끝자락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임종을 앞둔 이에게 마지막 인사로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이 

"그동안 수고 많았어. 이제 푹 쉬어요.."라는 말이기도 하니까. 

하나의 삶이 절반을 넘고 곡선의 정점을 지나 서서히 내려오는 시점에는 '힘내'라는 말이 무색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여태껏 쥐어짜가며 힘을 냈는데, 또 힘내라고?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올해 마흔다섯이 된 나도 "힘내" "파이팅"이라는 말이 전혀 힘이 되질 않으니까. 

그. 럼. 에. 도. 불. 구. 하. 고. 

이상하게도 장년기를 넘어 노년기를 준비하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그 누구도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들은 누군가의 보호 속에 살아온 수동적 존재이지, 비장애인들처럼 삶을 주도하거나 희생하며 살지도 않았고, 세상의 발전에 기여한 존재가 아니라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현장에 오래 있던 나의 감각에 기반한 추측일 뿐이지만) 

그래서일까.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이라는 명명 아래, 발달장애인들은 죽는 날까지 교육을 받고 준비만 하다 삶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준비가 있으면 결과와 성취가 있어야 하건만, 준비를 위한 준비가 그들의 삶을 지배해 버린다. 

그들도 버겁지만 배워가며 스스로 해내기 위해 노력해 왔고, 치사하고 억울한 마음 견뎌가며 적게나마 돈을 벌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중요한 결정 앞에는 모두들 '보호자'라는 존재를 찾고, 자기 나이가 40이 넘었어도 부모에게 확인을 요구할 때도 있다. 그들이 주도적 삶을 부르짖고 몸소 실천한다 해도, 세상은 그들을 수동적 존재, 내비게이터에 의존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발달장애인들에게 "고생 많았어. 수고했어. 네가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지 알아.."라는 위로의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다.  

종종 전 직장, 전전직장, 전전전직장에서 함께 했던 (대부분 취업을 연결시켜 준) 발달장애인 분들께 안부전화가 오곤 한다. 이 분들은 오히려 비장애인 친구들보다 용건 없이 생각나면 전화할 때가 참 많다. (그 맥락 없는 연락이 참 좋다^^)

"요즘 뭐 하면서 지내요?"라는 안부인사를 주고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꼭 마지막에 "00 씨 일하느라, 혹은 복지관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다니고 진짜 대단해요!"라는 지지의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나는 그런 말을 건네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 열심히 하라고, 나이 들면 회사 못 다닐 수도 있으니 벌 수 있을 때 돈 벌어서 많이 모아놓으라는 날 선 말을 내뱉던 사람이었다. 

내가 나이 듦에 지쳐가고 누군가에게 위로와 지지를 받고 싶기에 자연스레 나온 말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 40년, 50년, 그 이상을 살아온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고생했어. 수고했어.라는 위로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내가 먼저 그들에게 임영웅이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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