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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키우는 일

by rehabgirl

저의 일터에는 제가 키우는 작은 화분이 있습니다.

한창 무덥던 여름 날.

길을 걷다 만난 꽃가게에서 삼천원에 들여온 남자 손바닥 만한 올리브 나무 였지요.

그냥 이름이 이쁘고, 제멋대로 자라는 모양새가 좋아 한 번 사봤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이름만 넣어도 올리브 나무 키우는 법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키는대로, 사람들의 말대로 매주 월요일 흠뻑 물을 주고

햇살이 적당한 자리를 잡아주고

영양제도 뿌려가며 키웠습니다.

알려주는대로 성실히, 열심히 돌봐주었습니다.

일주일의 추석 연휴를 지나 출근하던 날,

올리브나무는 바짝 말라 바스라져 가고 있었고 그 아래 엉뚱한 형체가 보였습니다.

버섯이었습니다.

저는 버섯을 산 적도, 키운 적도 없는걸요.

순간 당황했지만 정말 순간일 뿐이었습니다.

흙 속에 숨어있던 버섯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저와 함께하는 발달장애인 분들은 꼭 이 화분 같아요.

무엇으로 자라날 지 예측이 안되거든요.

심지어 예측조차 무의미할 때가 많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

그저 물을 주고, 햇살을 주고, 바람을 맞게하며

감춰진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일.

가끔은 깜짝 놀래키기도 한답니다.

올리브를 키웠는데 버섯을 내놓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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