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운다는 건

지금도 빛나고 있어

by 창업가제이

세 살, 한 살. 아기와 아기를 돌보는 일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만 하는데도 24시간이 모자랐다. 둘째는 첫째보다 순해서 그나마 수월했지만 육아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우리 집은 4층짜리 빌라에 4층이었고, 둘째를 안고 있는 내게 첫째가 안아 달라고 보채면 둘째는 업고 첫째는 안아서 4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골목에 나와서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아이고 아기 엄마 힘들어서 어째.’ 하시곤 했다. 남편이 늦는 날이면 아이들 목욕 시간이 곤욕이었다. 첫째를 의자에 앉히고 욕실 문을 열어 놓고 둘째를 씻겼다. 둘째를 씻긴 다음 아기 띠로 업고 첫째를 씻겼다. 옷이며 집이며 엉망이었고 제일 엉망인 건 나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난 결혼과 출산이 빠른 편이었고, 아가씨인 친구들이 카페를 가고 쇼핑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남편이 외출하라고 해도 갈 데도 없고 아이들을 두고 나가기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크레이프 케이크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에 부럽다고 카톡을 하다가 하소연이 길어졌다.


땅 깊은 줄 모르고 우울함이 커져갔다. 그런 내가 카톡에서도 느껴졌는지 친구가 케이크 두 조각을 사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막 돌아왔고 둘째는 여전히 등에 업혀 있었다. 나는 싱크대 앞에서 늘어진 듯 앉아 있었고 친구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만난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놀랐는지, 아직도 그때의 내가 잔상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대충 묶은 머리, 후줄근해진 원피스와 아기 띠, 와중에 둘째 다리 시릴까 둘러멘 아기 담요까지. 놀랄 만하다. 누가 시킨 것도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선택한 이 모든 걸 겪어 내기가 힘들었다. 나는 원래 반짝반짝한 사람이었는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당찬 사람이었는데.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육아와 살림이 되풀이되는 매일에 지쳐 갔다.


나라는 폴더 안에 엄마라는 폴더가 새로 생긴 것뿐인데, 엄마 폴더에 나라는 폴더를 덮어쓰기 당한 기분이었다. 아니면 휴지통에 버려졌거나.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감 속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내린 결론은 ‘나를 다시 찾아야겠다.’ 이 한 줄이었다. 휴지통에서 나를 꺼내오든, 엄마 폴더 안 파일 중에 나를 찾아내서 새 폴더를 만들든 뭐라도 해야 했다. 지쳐 가는 나를 살리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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