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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Feb 28. 2019

회사 안 우물에 갇힌 사람들

나의 언어로 '회사 뽕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어떤 뜻인지 바로 알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뽕에 취해 있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꿈꿔왔던 업계에 첫 발을 딛지 않았던 탓인지, 회사는 껍데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회사 안에서 직급이 있는 사람들끼리의 묘한 권력관계나 알력 같은 것을 보며 마치 유치원 생이 진지하게 역할극 놀이하는 걸 바라보듯 귀엽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의 첫 과장님은 리더십도 있고 능력이나 성격도 참 좋으셨던 분인 것 같다. 조폭 같은 외관과는 다르게 통통 튀는 말투와 작은 키로 인해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았다. 그런데 일을 하면 직원들이 자꾸 과장님의 말에 벌벌 떨었다. 내 눈엔 그저 귀여운 옆집 아저씨인데 저분의 말 한마디에 왜 저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눈치를 보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 두세 달 정도 지나니까 나도 그분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그 분과 나의 관계가 무엇 인지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회사라는 환경에 조금 젖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가끔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과장님의 모습에서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게 엿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라는 껍데기를 벗겼을 때의 과장님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과장님도 우리들에게 종종 나중에 뭐 먹고살아야 하냐며 고령을 위한 실버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반 농담 삼아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인 것 같았다. 따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엔 회사에서 열심히 정치도 하고 부하 직원들도 돌보느라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사람을 쉽게 자르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회사 '외'의 나를 잘 정돈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은 3년 차가 다가오는 시점에 임원이 될 목표를 갖고 있다고 내게 고백했다. 꿈꾸던 기업에 입사했단 건 알았지만 임원까지 목표를 두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이미 본인이 어떤 부장님 라인을 꽉 잡고 있다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 정치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아직도 라인을 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것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자의 목표를 갖고 한 발씩 내딛는 것은 대찬성이지만 가끔 회사라는 제도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본인의 능력에 비해 과한 회사를 들어갔을 경우다. 이 연봉, 이 복지, 이 네임밸류가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서 (본인 기준) 자기보다 못한 회사에 들어간 사람을 안쓰럽고 딱하게 바라보는 거다. 본인의 잣대로 세상을 평가하는 거다.


한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모 백화점에 근무하던 5년 차 대리를 본 적이 있다. 같은 회사 지인에게 들어보니 상당한 힘을 갖고 있는 부서의 사람이었다. 매장의 입점과 퇴점의 권한을 쥐고 있었다. 어쩐지 말하는 것부터 권위의식이 장난 아니었다. 입사하게 되면 지방 근무는 피할 수 없는 거냐고 여쭤보니 그게 싫으면 지원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연고 없는 지방에서 무기한 근무할지도 모르는 환경에 움찔하자, 열정이 없는 거라고 했다. 개인의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고 나서 회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더 이상 질문할 거리가 없었다. 누구는 지방 근무가 크게 상관없을 수 있지만 이미 3년이 넘는 타지 생활로 지방 근무는 나랑 맞지 않는 걸 깨달았는데, 다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본인은 서울 본사에 근무하면서 말이다.






그 외에도 회사 안에서의 성과를 개인의 실력으로 착각하는 회사원을 참 많이 보았다. 고용의 불안정성, 직장이 아닌 직업 기준으로 변해가는 환경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느끼지 못해 입으로만 걱정된다고 말하는 회사원도 많이 보았다. 아닌 척 하지만 남들보다 넉넉한 월급에 우월감을 느끼며, 지구의 수 억만 분의 1을 차지하는 작은 회사라는 땅덩어리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듯 행동하는 분도 더러 보았다.



사실 어떤 삶이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하여 기업의 임원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1년만 다녀도 힘들어서 그만두는 직원이 허다한 판국에 몇십 년을 버틴 임원들은 사회의 내공이 얼마나 단단하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원래 성격, 오래된 꿈의 영향도 있지만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회사 업무에만 안주하지 않으려 한다. 회사라는 창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외부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나만의 재능을 키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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