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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Mar 01. 2019

감정노동을 오래 하면 생기는 일

감정노동이란 무엇일까?

실제적 감정을 속이고 전시적 감정으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의 감정노동도 사전적 의미와 비슷하다. 기꺼이 고객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고, 나의 개인적인 감정(통상 분노, 당혹, 놀람 등)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연예인, 심리상담사, 아르바이트 등 생각보다 많은 직업에서 감정노동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감정노동을 오래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 감정을 내가 알지 못한다.

감정을 억누른다는 게 어떤 걸까. 예를 들어보자. 바로 어제 연인과 헤어져 슬픔과 허무함에 잠겼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고 고객을 맞이하며 누구보다 반갑게 웃어야 한다. 당장 엉엉 울고 싶은데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계속 웃다 보면 슬픈 걸 잊어버린다. 분명히 슬펐는데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괜찮은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것이다. 출근하기 전에 엄마랑 대판 싸웠다. 얼굴에 분노가 가득하지만 그걸 드러내 놨다가는 컴플레인 감이다. 다시 웃는다. 아무도 안볼 때 언짢은 감정을 조금이라도 드러낼 수 있는 사무직과는 다르게 철저히 숨기고 배제해야 하는 서비스직.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덧 내 감정을 내가 알 수 없게 된다. 슬플 때 슬프지 않고 기쁠 때 기쁘지 않다.




웬만한 일에 놀라지 않는다.

별의별 고객을 마주하다 보니 웬만한 사건에 크게 감흥이 없다. 호텔 고객보다 카지노 고객의 스케일이 더 큰데,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번은 카리스마를 내뿜는 카지노 쪽 여자 과장님이 휴대폰에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객실 내 대형 스마트 TV가 두 동강 나 있는 것이다. TV가 박살 난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 과장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저희 고객이 돈 잃고 열 받아서 화분을 던져서 깨졌어요. 변상할 테니 여기로 연락 주세요.’라며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한동안 그 과장님의 덤덤한 태도가 뇌리에 남았다.



*카지노 VIP 고객은 보통 비서처럼 전담 직원이 있고, 이를 마케터라고 부른다. 일반 회사의 마케팅 업무와는 다소 다르다.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카지노 비용으로 호텔 측에 변상한다. VIP 고객은 하루에 몇억을 쓸 정도로 돈이 많은 편이다.




동안, 밝은 인상의 비결

좋은 점도 있다. 승무원들이 더 예뻐 보이는 이유는 밝고 순한 인상 때문이다. 승무원이 되고 나서 인상이 확 바뀐 사람도 자주 봤을 것이다. 계속 웃다 보면 얼굴 근육을 천장 쪽으로 계속 당겨지기 때문에 더 어려 보이고 인상도 부드러워진다. 호텔리어들 중에서도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신입사원 평균 연령이 낮아 같이 활기차게 일해서 일수도 있지만 늘 웃어 버릇하는 습관 때문에 더욱 어려 보인다. 타고나길 무섭게 생긴 사람도 대화를 해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근하다.




고객과 회사, 나의 감정을 완전히 분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감정노동의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제시하는 방법은 고객과 나의 감정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고객이 소리 지르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대해 '나한테'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생각한다. 불만의 대상은 내가 아닌 회사이며 죄송하단 말도 내가 미안한 게 아닌 회사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과하는 것이다. 이런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불만이 생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다짜고짜 나한테 왜 성질이지?'


직원이 직접 잘못해서 고객이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시설 문제 등과 같이 외부 요인들로 인해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당황하거나 놀라지 말고 회사의 대변인으로서 잘 경청해주고 공감해주고 사과하면 된다. 퇴근 후에는 깨끗이 잊어버린다. 그 고객과 나의 관계가 아니니까. 설령 심한 말을 들었다고 해도 나한테 한 게 아니라는 걸 되새기며 잊고 퇴근 후의 Life를 즐기도록 하자. 물론 인격 모독적 발언, 성희롱, 폭언에 대해서는 참아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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